낙마시 대한민국 정통성 흔들리고 한미일관계 휘청댄다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중도사퇴하면 안되는 두가지 이유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이미 예견했던 바이지만 상황이 더 꼬이면서 앞이 잘 안 보인다. 믿었던 조선일보마저도 6월 18일자 1면 기사에서 “문창극 총리 카드 동력 상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치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국면”이라고 소개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친박(친박근혜)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문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예정에 없던 새누리당 의총도 열린다고 하니 그 잘난 1등 신문이 앞장서 바람을 잡는 모양새다.

임명동의안 제출도 대통령 결재가 미뤄지면서 하루 늦춰졌으니 남은 건 세 가지 옵션이다. 지명철회, 자진사퇴, 인사청문회 강행. 참담하다. 이러고도 마녀사냥은 진행 중이다. 문창극이 여론의 압박에 밀려 낙마하는 나쁜 시나리오를 반복해 전하는 신문·방송 그리고 ‘언론 위의 언론’ 대형 포털은 “이래도 자진 사퇴 안 할래?”하고 그를 향해 윽박지르고 있다. 범죄집단에 다름 아닌 KBS가 시작했던 선동방송을 사람들이 지탄하기는커녕 온 나라가 문창극 인격살인에 합세하는 꼴이다.

총리 임명이라는 헌법적 행위에 담긴 두 가지 뜻

이게 도무지 정상일 리 없다. 집권당과 모든 언론이 떠들어대는 헛소리의 레파토리는 수도 없이 많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우리가 산다”, “이대로 가다가는 7·30재보선에서 참패한다”, “살짝 회복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요동을 치는데….” 물어보자. 문창극만 버리면 모든 게 해결될까? 국가 개조의 적임자라고 지명했던 그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치고 나면, 실체가 없는 국민정서라는 것에 그저 맹종을 한다면, 재보선에서 이기고 대한민국은 과연 안녕할까?

감히 밝히지만, 그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것을 나는 엄중히 경고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총리 임명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행위가 이토록 엉망진창이라는 게 개탄스럽지만, 간과해온 두 가지 결정적 차원을 짚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문창극 사태의 본질은 첫째 건국(자유민주주의)과 부국(시장경제)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를 확인해보는 집단수업의 계기다. 때문에 문창극 죽이기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그리고 1960~70년대 개발연대의 금자탑을 짓밟는 결과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문창극은 본인이 의도했건 아니건 대한민국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

사실 문창극은 본인이 의도했건 아니건 대한민국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올라섰다. 온누리교회에서 그는 “너희들은 이조 5백 년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시련이 필요하다”고 강연했다. 또 “(건국 당시의)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북 분단도 하나님의 뜻”라고 강조했는데, 그건 누구의 곡해대로 식민지배가 당연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분단이 옳았다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조선왕조 몰락은 ‘역사 실패’ 혹은 자기관리 실패에 따른 업보이지만, 그걸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건국이 위대한 성취임을 강조한 것뿐이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발언이자 신앙고백인 그걸 “문창극이 식민 지배는 하나님 뜻이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건 거의 생떼 수준에 불과하다. 그가 “우리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데, 이것이 우리민족 DNA”라는 것 역시 악마의 편집이 만들어낸 반쪽 발언에 불과하다.

선비 기질 DNA를 바꾼 두 명의 주인공이 이승만과 박정희

그걸 한민족 비하라고 흥분하는 세력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 실패와 그에 따른 식민지배의 교훈에 눈 감겠다는 똥배짱에 불과하다. 조선왕조? 3%의 지배계층(왕실과 양반)이 허송세월했고, 이방 등은 아전들은 97%의 백성들을 달달 볶아댔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얽매여 과학기술과 장인(匠人)을 천시함으로써 부와 국력을 창출할 기회를 결정적으로 망쳤다. 그런 유교적 질서와, 한때 멋졌으나 시대착오적인 선비 기질 DNA를 바꾼 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고, 부국 대통령 박정희였다.

사실이다. 박정희는 조선왕조 500년 이후 지금까지 600년 동안 유지돼온 주자학적 명분론을 넘어섰던, 아주 예외적인 지도자였다. 근본주의 성향의 유가적(儒家的) 질서와 굿바이했던 그였기 때문에 박력과 추진력이 꿈틀거렸다. 박정희 자신이 그런 정신사적 맥락을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 증거가 국민교육현장 중간에 들어있는 문구인“공익과 질서를 앞세우고,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정신이다.

상무(尙武)정신과 실용주의가 20세기 현대인 삶에 맞는다

우남 이승만이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을 통해 낡은 유가적 질서를 부숴버리려했다면, 박정희는 몸에 밴 상무(尙武)정신과 실용주의를 통해 20세기 현대의 삶에 걸맞는 한국인의 멘탈리티를 구현하려 했다. 그게 역사의 상식이고, 문창극이 말하려 했던 바의 핵심이다. 그와 나는 가칭 ‘시민교과서’포럼 멤버이기 때문에 그걸 더 잘 안다. 그랬더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더니 이 땅의 지식인 무리들은 박정희라면 지금도 앙앙불락하고 독재자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피 속에 양반과 아전 기질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지적하려 한다.

지적(知的) 난장이의 무리 혹은 속류(俗流) 지식인에 불과한 그들이 볼 때 박정희는 600년 내내 몸에 밴 문약(文弱)의 전통에서 성큼 벗어나 있고, 그래서 더욱 낯설다. 나는 문창극이 청문회까지 가서 이 역사의 진리를 당당히 설파해주길 원한다.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야당과 가짜 지식인, 선동언론, 그리고 ‘미개한’한국인들에게 이걸 증거해주길 바란다. 여기에 성공하면 당신은 국회 비준을 받건 못 받건 건국과 부국 이념의 순교자(殉敎者)가 될 것이다. 죄송하다. 애국 우파에서 한 사람이 죽어, 아니 씨알 하나가 땅에 떨어질 때 이 나라 이 백성은 조금 깨어날 지도 모른다. 당신의 등을 떠미는 게 아니다. 나도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서약이다.

문창극 죽이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좌파 민족주의의 준동

둘째 문창극 죽이기의 배후에는 좌파 민족주의의 준동이 있다. 즉 철 지난 민족감정을 부추겨 ‘나쁜 나라 일본’ 그리고 ‘친일파 문창극’이라는 가상적 혹은 악마화된 적을 만들어내야 먹고 살 수 있는 퇴행적 좌파세력의 음험한 장난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교회 강연 내용을 맘대로 편집한 ‘악마의 편집’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마디로 야당과 가짜 지식인, 선동언론, 그리고 ‘미개한’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집단정서가 있다면, 그건 민족주의 감정이다.

정확하게 말해 북한은 좌파 민족주의이고, 한국은 우파 민족주의이다. 그게 해방 이후 우리에게 상수(常數)로 존재해왔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우파 민족주의자였다. 단 그들에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남북대결에서 보기 좋게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우파 민족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이 빠른 속도로 증발했다. 최소한의 애국심도 빠져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정서에 바로 휩쓸리고나면, 친북정서 내지 종북정서로 바로 연결된다.

지금 좌파는 ‘1965년 체제’의 붕괴를 노리고 있다

그걸 다른 말로 주사파 혹은 NL파라고 하는데, 한국 지식사회의 기본 정서는 이것이다. 문창극은 이 정서에서 가장 먼 사람이었는데, 총리 지명을 계기로 저들의 덫에 제대로 걸려든 모양새이다. 지명 초기에 그는 “왜 나보고 어느날부터 반민족주의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건 몸을 낮추려는 태도이기도 하겠지만, 지난 30년 지식사회의 패러다임 변화에 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좌파 진보세력에게 문창극은 친일매국노로 이미 찍혔다.

넓은 세상에 열려있는 사람, 농업국가에서 해양국가로 바뀐 대한민국에 잘 적응한 사람들에게 좌파 민족주의 세력은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하고 작살을 낸다. 그들이 원하는 건 딱 하나다. ‘1965년 체제’의 붕괴가 그것이다. 눈먼 지식인과 야당의 극렬반대를 무릎 쓰고 1965년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를 했는데, 그 체제를 허물어뜨리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도했던 일본과의 친선관계가 한미일 3각 체제를 완성해 안보를 든든하게 해줬고, 부국으로 우리를 일어서게 해줬지만, 좌파들은 완전히 마이동풍이다.

조선왕조 쇄국주의로 돌아가 중국 속국이 되자?

그래서 저들은 시대착오저인데, 저들은 이웃 일본을 가상적으로 돌리고, 맹방 중의 맹방인 미국과는 사이가 뻘쭘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MD도 지지부진하고, 10여년 전부터 효순 미선양 사망이나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 미국이라면 부르르 떨며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대신 기회만 나면 친(親)중국으로 치닫고 있다. 아니 우리는 오래 전부터 중국이라는 자장권(磁場圈)에 깊숙이 빨려들어갔다. 달리 말해 해양국가를 포기한 채 다시 대원군 식의 쇄국정책으로 돌아서자는 것이고, 중국의 변두리 나라였던 조선왕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이게 당신들이 아들 딸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조국인가? 이제야 앞뒤 사정이 분명해졌다. 이 글을 요약한다. 문창극 죽이기에 올인하는 그들은 기본적으로 시야가 너무나 좁고 자폐적이기 때문에 철지난 저항적 민족주의 감정에 충실하며, 한일국교 정상화가 된 1965년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이룩한 건국과 부국의 가치도 외면한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절대빈곤의 늪을 건너 전대미문의 도약과 성취의 문을 열어젖히면서 우리가 외쳤던 하면 된다’는 구호에도 관심없다.

이건 우파와 좌파 모두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빅게임

그때 우리가 이뤄낸 산업화의 위대한 꿈은 파독 광부·간호사, 파월 장병에서 중동의 건설현장의 기업체, 새마을운동 지도자 그리고 산업전사에 이르는 국민 모두의 피와 땀으로 일으켜 세운 불멸의 금자탑인데, 그걸 허물자는 것이 문창극 죽이기에 나선 세력이다. 이제 판이 커졌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청문회와 국회 비준은 우파와 좌파 모두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빅게임이 됐다. 범죄집단 KBS의 거짓선동 방송 때문에 또 한 번의 소모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파로서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

이제 마무리다. 문창극 후보자에게 당부한다. 저번에 말한대로 당신은 실로 많은 걸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는 이념 갈등에 찢기고, 선동질에 바람 든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죄다 보일텐데, 그 구조를 한 번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이 글이다. 이 끔찍하고 살벌한 구조, 비정상의 끝을 달리는 한국사회의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바로 잡아야 할 게 박근혜정부의 시대적 소명이고, 대통령을 보좌할 총리의 몫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 중도사퇴를 권유해온다면?

기회에 열린 보수 이념을 가진 사람에 그쳐있던 당신이 이번 일을 계기로 진정한 전사(戰士)이자,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나기를 나는 간곡히 원한다. 싸움꾼이 되라는 당부다. 그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열린 해양국가의 꿈에 충실해달라는 주문이다. 그건 외로운 길만이 아니다. 우남 이승만이 열었고, 부국 대통령 박정희가 넓혔던 길이다. 다행이 우군도 없지 않다. 당연히 중도사퇴란 없다. 혹시 만의 하나 대통령이 그걸 당신에게 권유한다면, 거꾸로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우린 건국과 부국의 가치를 지켜야 하고, 1965년 체제를 더 공고히 해나갈 의무가 있습니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