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 축구가 이란을 상대로 7년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23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전에서 난적 이란을 2-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금메달 획득으로 대회 2연패를 노리는 한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이란이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충격적인 패배(1-2)를 당해 조 2위로 밀리면서 토너먼트 첫 판 강호 이란을 만나는 험난한 길로 들어섰다. 

이란은 그동안 한국을 괴롭혀온 대표적인 팀이었다. 이란은 월드컵 예선 등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기 일쑤였고, '침대축구'로 짜증을 유발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한국은 2011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을 1-0으로 이긴 후 7년 동안 5차례 맞붙어 1무 4패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이란에 설욕할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한국은 와일드 카드로 A대표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과 1번 골키퍼 조현우(대구)를 뽑았고 J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황의조(감바 오사카)도 합류시켰다. 러시아 월드컵 멤버였던 '젊은피' 황희찬(잘츠부르크)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더해져 역대 최강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 꼽혔다. 반면 이란은 21세 이하 선수들(골키퍼만 22세)로 대표팀을 꾸려 나왔다. 

한국이 지면 안되는 경기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이란 선수들의 피지컬은 좋았고,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으로 한국 선수들은 다소 위축된 플레이를 하며 전반 막판이 다 되도록 골을 넣지 못했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황의조가 해결사로 나섰다. 전반 40분 황인범(아산)이 페널티 지역 좌측을 돌파한 뒤 문전으로 보내준 볼을 황의조가 깔끔한 오른발 슛으로 이란 골문을 열어젖혔다. 황인범의 돌파와 패스가 돋보였으며, 골 냄새를 맡고 좋은 위치를 잡고 있던 황의조의 정확한 슛이 선제골을 완성시켰다.

황의조의 이번 대회 5호 골이었다. 황의조는 예선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해트트랙을 해내며 최고의 골감각을 뽐냈고, 말레이시아전 1골, 이란전 1골로 벌써 5골이나 넣었다. 한국이 4경기를 치르면서 뽑아낸 10골 가운데 절반을 황의조가 해결해준 것이다. 김학범 감독이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했을 때 유럽파가 아니며 성남 시절 김학범 감독의 제자였다는 이유로 '인맥 선발'이라며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황의조는 폭풍 골 퍼레이드로 논란을 스스로 잠재우며 자신을 불러준 김학범 감독에게 보은하고 있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승우는 1-0 불안한 리드를 '승리 확신'으로 만드는 통렬한 쐐기골을 터뜨렸다. 이날 이란전에 이승우는 처음 선발 출전했다. 김학범 감독이 내세운 '비밀병기'였던 셈. 전반 이승우는 특유의 발재간과 스피드를 선보이며 이란 진영을 뛰어다녔지만 수비들과 몸싸움에서 밀리거나 의욕 과잉으로 볼 간수를 잘 못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러나 후반 10분 터뜨린 골로 진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볼을 잡은 이승우는 가운데 쪽으로 드리블하며 수비수 두 명을 가볍게 제친 다음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려 골네트를 흔들었다. 묘기같은 골에 축구팬들은 "메시의 골을 보는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승우의 강렬한 아시안게임 데뷔골이 이란전에서 터져나왔다는 것, 선배들이 못해주고 있던 것을 20세 막내 이승우가 해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커 보였다.

그리고 이란 격파에 공을 세운 또 한 명의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캡틴' 손흥민이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손흥민은 이날 눈에 띌 만한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골이나 어시스트도 없었다. 하지만 이란전 승리에 그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다.

손흥민은 이란 수비수들의 시선을 몰고 다녔다. 전반 시작 후 막판까지 한국의 후배 선수들은 볼만 잡으면 손흥민 쪽을 쳐다보고 볼을 연결시켜주려 했다. 우측 공격을 주로 맡은 손흥민에게 볼이 집중 투입됐다. 이란 수비가 손흥민 쪽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워낙 거칠게 밀착 마크를 당하며 짜증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손흥민은 개의치 않으면서 연계 플레이에 집중했다. 한국 선수들이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 진정시켰고 폭넓게 뛰어다니며 공수에서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하고 지시를 하느라 분주했다.

황의조의 선제골 때 김진야-황인범의 좌측 돌파가 징검다리가 됐는데 반대편 쪽에 있던 손흥민이 이란 수비수들을 분산시킨 효과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승우의 추가골 때도 이란 수비진은 드리블하는 이승우를 신경쓰랴, 손흥민의 움직임을 파악하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황의조, 이승우가 골을 넣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포옹하거나 안아서 번쩍 들어올리며 축하와 격려를 해준 것도 손흥민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이란의 어린 선수들이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 흘릴 때 다가가 따뜻한 격려의 손을 내민 것도 한국의 캡틴이자 월드스타 손흥민이었다.

이란전만 놓고 보면 한국은 조별리그에서의 부진과 아쉬움을 시원스럽게 날렸고, 해줘야 할 선수들이 제 몫을 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조현우가 부상 당하며 교체돼 생긴 걱정만 빼면 통쾌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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