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전 나무키워 장학금 후원" 큰 뜻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애정어린 투자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시대의 풍파에도 굳건한 경영철학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지금의 SK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빚덩어리 선경직물을 위기에서 구하고 매출이 10배가 넘는 유공, 그리고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 산업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오는 26일 최종현 회장의 20주기를 맞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개척해 나간 한국 산업화의 선구자인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가 가진 신념과 철학을 되새겨보자.<편집자주>

[미디어펜=최주영 기자]“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을 세워 지식산업사회를 구축해 일등국가로 발전해야 한다.”(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과의 대화 중)

"인간은 석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자원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은 사용하면 할수록 능력이 향상되고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조동성 전 서울대 교수와 대화 중)

   
▲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1977년 부인 박계희 여사와 함께 충청북도 충주시 인등산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사진=SK 제공


최종현 회장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인재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기업인이다. 최종현 회장이 인재 육성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도 자원빈국인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SK의 성장조차 불투명했던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이유다. 

우리나라 인등산(충청북도 충주) 광덕산(천안) 시항산(영동)에는 최종현 회장이 37년 전 손수 심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30여년 간 나무를 키우면서 이를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최종현 회장의 큰 뜻이 담겨있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는 말로 조림을 시작했다. 

최종현 회장의 아들 최태원 회장도 임직원들과 산행을 하기 위해 인등산 '인재의 숲'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안팎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최종현 회장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가적 안목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종현 회장의 ‘인재 양성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대표적 사례는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이다.

“돈 좀 아낀다고 뭘 하겠소. 이왕이면 최고 수준의 장학금으로 합시다." 회사 임원 일부가 ‘해외 유학생 장학금으로 연간 4만~5만 달러는 너무 많다’는 의견을 내놓자 최종현 회장이 전한 말이다. 재계에서 최종현 회장의 인재 양성이 특히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SK를 위한 인재 양성이 아닌, 사회 전체를 이끌 리더에 대한 인재 양성이었다는 점에서 여느 기업가의 인재양성과는 다르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 1985년 최종현 SK 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지원하는 해외 유학 장학생과 출국 간담회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최종현 회장은 개인 주식 50퍼센트를 들여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해외 유학 장학생을 선발하고 5년간 유학비 전체를 지원해주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되던 시절 ‘일등국가가 되려면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의지였지만 일각에서는 파격적인 혜택에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다. 

선대 회장의 인재 육성 철학을 이어받은 최태원 회장도 18년 전인 2000년부터 국제학술사업을 신설해 '국제학술교류지원사업'을 실시 중이다. 중국과 아시아 내 17개의 아시아연구센터를 운영해 세계적 수준의 학술포럼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장학퀴즈’ 후원 역시 최종현 회장의 인재 육성을 위한 노력이다. 1972년 시작된 MBC 장학퀴즈는 시청률 저조로 1년만에 종영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최종현 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하다면 조건 없이 지원해도 괜찮다”며 단독 지원을 결정했다. 이후 매년 두차례씩 장학퀴즈 장원 학생들을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인재 양성 뿐 아니라 국가 및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각종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그룹 발원지인 수원지역에는 1995년에 ‘선경도서관’을 만들어 시에 기부했다. 당시 이 도서관은 수원소재 3개 시립도서관중 최대 규모였으며, 국내 전체적으로도 상위 10위에 드는 규모였다. 아들 최태원 회장도 선친의 뜻을 계승, 2006년에는 수원에 ‘해비타트-SK행복마을’ 3개동을 건립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SK청솔노인복지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즐기는 최종현 회장/ 사진=SK 제공


최종현 회장은 SK성장의 터전을 제공한 울산지역에는 울산대공원을 조성해 기부했다.  울산에는 250만평 부지에 SK석유화학 관계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울산시는 ‘산업도시’, ‘공해도시’라는 한계 속에 이렇다 할 녹색공간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종현 회장은 “110만 울산시민 모두에게 1평씩의 녹색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울산시 신정동, 옥동 일원에 녹지 공간 110만평을 확보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최종현 회장의 사회 공헌은 국경을 넘어 글로벌로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베트남 안면기형 어린이 수술 지원이다. 안면 기형은 해당 어린이 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고통 받는 질환인 만큼, 베트남 사회에 SK가 펼쳐온 안면기형 수술 프로그램은 친한(親韓) 정서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SK그룹에 따르면 지난 1996년 5월 하노이에서 처음 시작된 해당 프로그램은 올해까지 총 4000명에 달하는 수혜자를 배출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종현 회장이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기울인 노력은 가히 파격적인 시도"라며 "오늘날 최태원 회장이 말하는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가치창출’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