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신용등급 평가로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만큼 신용평가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 임직원들에게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통보했다.

해당 신평사들은 평가 대상 기업들과 신용등급 및 결정 시기를 사전에 조율하며 신용평가 업무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채 발행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신용등급 장사'를 해온 것이다.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할 때 2개 이상의 신평사로부터 신용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제시한 신평사를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좋은 등급을 제시한 신용평가를 고르려는 기업과 영업을 해야 하는 신평사 사이에는 '갑(甲)과 을(乙)' 관계가 형성된다.

이에 따라 경기 상황이나 실적 흐름과 무관하게 기업의 신용등급은 갈수록 '상향 평준화'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33개 기업의 국내 평가 등급은 평균 'AA+(조정수치 1.6)'인 반면 해외에서는 'A-(6.8)'를 받아 등급 괴리가 5.2에 달했다. 이는 국내 신용 등급이 해외보다 24%정도 고평가돼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막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업이 신평사를 바꾸도록 하는 '순환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순환평가제가 도입되면 신평사 입장에서는 수주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신용등급 평가가 가능해진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은 '버블'이 많을 수 밖에 없어 신평사들이 업체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순환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순환평가제를 실시하면 업체들이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신용평가사를 고를 수 없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은 더욱 책임감 있고 엄격한 등급을 매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연구원은 "다만 신용평가사 3사가 준 공기업 수준의 독과점 체제를 형성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며 "신평사들에게 수수료 수입을 어느 정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이들이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수수료를 낮추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 도입 예정인 독자신용등급을 조기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독자신용등급은 정부나 모기업,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개별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만을 평가해 신용등급을 매기는 제도다.

지난 3월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모회사 KT의 계열사 지원 가능성이 약화되면서, KT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신영증권 김세용 연구원은 "연내 독자신용등급 도입과 함께 계열지원 의지 및 능력에 따른 등급 조정 근거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요구된다"며 "특히 그룹 내 비핵심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에 대한 암묵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보수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처럼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 조정이 보수적으로 이뤄진다면, 우량등급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HMC투자증권의 황원하 연구원은 "국내 신평사들이 제시하는 신용등급이 전반적으로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금융당국의 제재까지 이뤄진다면 앞으로 신용등급은 과거보다 보수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우량등급에서 조정되는 횟수가 늘어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황 연구원은 "그동안 안정성 면에서도 우수하다고 인정받은 AA- 이상 등급에서는 조정이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량등급의 경우 변동성 자체가 제한적이었는데 신평사들이 보수적인 검토를 실시하면 우량등급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