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자유 독립위해 '행동하는 양심'...6.25참전 외국병사들 희생 떠올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17) -그리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바이런의 낭만과 열정의 시(詩)  바이런(1788-1824)의『바이런 시선(詩選)』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이사장
자유 위해 목숨 바친 바이런 시에서 6.25 참전 외국 병사들의 희생 떠올라

19세기 초반 영국의 후기 낭만주의를 이끈 3대 시인의 공통점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점이다. 바이런(Byron)은 36세, 셸리(Shelley)는 29세, 키츠(Keats)는 26세의 혈기 넘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2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들은 극적인 짧은 인생만큼이나 영국 시단에 강렬한 자취를 남겼다. 이들이 남긴 시는 낭만과 열정이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전기 낭만주의의 대가인 워즈워드(Wordsworth)나 코울리지(Coleridge)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바이런이다. <바이런 시선(詩選)>을 읽는 이유는 그리스 고전 읽기의 일환이다. 유난히 그리스 문명에 심취하고 찬미했던 사람이 바로 바이런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그리스 문화에 탐닉하는 정도를 넘어 19세기 초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리스 무장독립운동에 직접 참전했다가, 열병에 걸려 객사했다. 그리스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안고 생을 마감할 정도로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타국인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기림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자유와 정의를 추구한 그의 고귀한 정신 때문이다.

   
▲바이런 초상, Richard Westall(1765-1836) 작, 런던 국립 초상화 갤러리 소장

'조각 같은 외모’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바이런, 천재이자 미남이던 귀족 바이런은 자유분방한 생활과 지나친 쾌락의 추구로 귀족계급과 사교계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는 그의 자유로운 정신만큼이나 당시 유럽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에 대한 풍자적인 공격을 마음껏 펼치는 한편, 영혼의 방황의 쓰라림과 달콤한 사랑을 노래했다.

바이런의 다양한 작품이 우리나라에 완역되어 소개된 것은 아직 없다. 바이런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졌더라"는 문명(文名)을 날리게 만들어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1812)조차 소개되지 못했다. <바이런 시선>은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와 <돈 주앙> 등 그의 대표작에서 뽑은 50편이 시가 담겼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랜다.

그는 무모하리만큼의 열정적인 기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인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던 중 바람이 자서 배가 나아갈 수 없게 되자, 헬레스폰투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헤엄쳐서 건넜다. 가장 좁은 곳의 너비도 1km가 넘는다고 하니 그의 바다수영 실력이 경이롭기만 하다. 한쪽발의 장애를 안고 살았던 그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남달리 체력을 강인하게 단련한 덕분이었을 것 같다.

그가 그토록 위험을 감내하는 모험을 한 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레안드로스(Leandros)와 경쟁하기 위해서였으니, 바이런의 충동적 격정을 잘 말해준다. 레안드로스가 유럽쪽 아비도스에서 아시아 쪽 세스토스로 해협을 헤엄쳐 건너가 비너스의 여사제인 자신의 애인 헤로(Hero)를 만났다는 고사를 자신도 똑같이 실행해 보기 위해서였다.

레안드로스에 대한 질투심이었을까? 유럽의 여성들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강인한 체력의 과시였을까? 어떻든 정말 바이런의 격정은 못 말리는 성정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일화는 바이런에게 애모의 마음 품었던 수많은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만일, 어두운 12월에,
레안드로스가 밤마다(어느 처녀가 이 이야기를 모르랴?)
그대의 시냇물인 널따란 헬레스폰투스를 건넜다면.

만일 겨울 폭풍우가 포효할 때,
그가 헤로에게로, 기꺼이 서둘러 헤엄쳐 갔다면,
그리고 이처럼 옛날에도 그대의 파도가 거셌다면,
아름다운 비너스여! 나는 이 두 사람이 어찌나 가엾은지!

현대의 타락한 자식인 나로 말하면,
5월의 온화한 날이었는데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내 사지를 맥없이 뻗으며,
오늘 내가 공적을 세웠다고 생각하노라.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전설에 따르면,
레안드로스는 급류를 거슬러 강을 건넜다는데,
구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밖의 일은 주님만이 아시리,
그는 ‘사랑’을 위해 헤엄쳤으나, 나는 ‘영광’을 위해 헤엄쳤으니.

누가 더 나은 일을 했는지는 말하기 어려우리,
죽어야만 하는 슬픈 인간들이여!
이렇게 신들은 여전히 그대들을 괴롭히니!
레안드로스는 그의 노고를 잃었고,
나는 나의 장난기를 잃었으니,
왜냐하면 그는 익사했고, 나는 학질을 앓게 되었으니.

<바이런 시선>에는 바이런 특유의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연애시도 많지만, 그리스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대한 회억과 찬탄이 담긴 시도 여럿 있다. <돈 주앙>에 나오는 ‘그리스의 섬들’이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에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바이런의 애탄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이런이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자유를 지켜낸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바다에서 그리스의 과거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도 투르크에 압제 당하고 있던 그리스의 ‘노예적 삶’의 현실에 대한 비탄과 분노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이 마음껏 발현될 수 있었던 그리스 문명의 진수야말로 그의 방황하는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섬들, 그리스의 섬들이여!
불타듯 열렬한 사포가 사랑하고 노래했던 곳,
전쟁과 평화의 기예가 성장했던 곳,
델로스가 솟아오르고 아폴론이 태어났던 곳!
영원한 여름이 그들을 아직 금빛으로 도금하고 있으나,
태양을 빼고는, 모두가 저물어 버렸네.

스키오스인과 테오스인의 시의 신, 영웅의 하프, 연인의 류트는
그대들의 해안들이 거절한 명성을 발견했다네.
그들의 출생지만이, 그대들의 선조들의
“축복받은 자들의 섬들”보다 더 멀리
서쪽으로 메아리치는 소리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네.

산들은 마라톤 평원을 바라보고-
마라톤 평원은 바다를 바라본다네.
거기서 한 시간 홀로 명상에 잠겨, 나는
그리스가 아직도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고 꿈꾸었다네.
왜냐하면 페르시아 사람들의 무덤 위에 서 있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노예라고 생각할 수가 없기에.

왕이 바다에서 태어난 살라미스를 내려다보며
바위 벼랑 끝에 앉아 있고, 수천 척이나 되는
배들이 그 아래에 있고,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의
백성들이 있다네. 이 모두가 그의 것이었다네!
그는 새벽에 그들을 헤아렸다네.
그런데 해가 졌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나라여? 그대의 목소리 없는 해안에서,
이제 영웅서사시는 고요하고-
영웅의 가슴은 이제 더 이상 고동치지 않는구나!
그렇게 오래도록 성스러웠던, 그대 수금은
내 손과 같은 손안으로 퇴보해 가야 하는가?
……

수니온의 대리석 절벽 위에 나를 올려놓아 다오,
파도와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우리 서로의
속삭임이 서로 휩쓸려 가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그곳에.
거기서, 백조처럼, 노래하면서 죽게 해 다오.
노예들의 나라가 결코 나의 나라가 될 수 없으리-
사모스 포도주의 저 술잔을 내팽개쳐라.

   
▲ 에메랄드 빛 에게 해를 감싸고 도는 아름다운 수니온 곶과 포세이돈 신전의 풍광, ⓒ박경귀

자유로운 삶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바이런은 그리스의 노예적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가 직접 그리스 독립전쟁에 뛰어든 이유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스의 자유를 갈구하면서 죽었다.

전쟁터인 미솔롱기에서 1824년 1월 22일 쓴 ‘오늘 내 나이 서른여섯 살이 끝난다네’라는 시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19일에 숨을 거둘 자신의 운명을 노래했다. 그는 죽음의 막바지까지 자유에 대한 갈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그리스 자유의 회복을 위해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지금은 이 마음이 감동받지 못하는 때,
내 마음이 다른 마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니.
하지만, 내가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리!
……

칼, 깃발, 전쟁터,
영광과 그리스를, 내 주위에서 보라!
자기의 방패 위에 실려 가는 스파르타인보다
더 자유로운 자는 없다네.
……

그대가 그대의 청춘을 후회한다며, 왜 사는가?
명예로운 죽음의 땅이
여기 있다. 전쟁터로 달려가,
그대의 목숨을 바쳐라!

찾아내라-찾는 이가 없고 어쩌다 눈에 띄는-
그대에게 가장 잘 맞는 병사의 무덤을.
그런 다음 주위를 둘러보고 그대의 땅을 선택해,
영원한 휴식을 취하라.

젊은 날의 무절제한 여성편력과 방탕한 생활로 지탄을 받았던 바이런은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 독립전쟁에 투신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자유분망한 사랑 못지않게 자유와 정의에 대한 찬미와 열정 또한 넘쳤다. 그리스는 그에게 제2의 조국이자, 자유정신의 이상향이었다. 그가 그리스의 전쟁터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이유다.

물론 그리스 시대에도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할 병사들의 애국심을 북돋우는 전쟁 시가 적지 않았다. 그리스 최강의 군사 국가이던 스파르타의 궁정 시인이던 티르타이오스(Tyrtaios)의 시 또한 젊은 전사들의 용기를 격동시켰다.

하지만 바이런의 시가 더 울림이 큰 이유는 바로 그의 시가 전쟁터에 직접 뛰어든 자신의 생생한 염원과 격정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뛰어든 ‘행동하는 양심’ 이었다. 우리는 타국은 차치하고 조국의 자유가 침탈당할 때 아낌없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추천도서 : 『바이런 시선』, 조지 바이런 지음, 윤명옥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2010), 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