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신설보다 제대로 지키게 해야, 충분한 논의통해 만들어야

   
▲ 이동응 경총 전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 전반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안전시스템 개혁에 대한 요구사항도 빗발친다. 대통령도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안전처 신설 등 재난안전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 등을 약속했다. 경영계 차원에서도 경총의 주도로 사업장 안전관리지침을 내리고, 각 업종의 최고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재예방을 위한 경영계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사고예방을 위한 노력에 분주하다. 개별 기업에서는 이런 지침을 따라 안전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예산을 확대하는 등 안전경영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안전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세워진 시설과 설비들이 30~40년의 수령을 지나면서 유지보수의 문제점이 하나둘 터지고 있다. 사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안전에 대한 새로운 투자와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국회의 해법은 무조건 사업장 안전과 관련해 사업주 처벌을 비롯한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을 중시하고 재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재난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의 안전환경을 개선하고 국민에게 안전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노력 대신 처벌과 벌금이 고작이다.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업장별 안전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되고 있다. 적개심과 분노에 근거에 과도한 규제를 신설하는 것보다는 현행 법규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세월호나 서울지하철 추돌사고 등은 기존 법규를 지키지 않아서 비롯된 것이다. 규제를 새로 만들 때는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서 만들어서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산업현장의 근로자 보호를 위한 안전규제는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다. 다만 안전과 관련한 규제라도 규제를 신설할 때는 합리적 이유와 그 효과성에 대한 검증이 우선이다. 사고원인과 대책에 대한 전문가의 차분하고 냉정한 검토가 먼저다. 감정에 치우친 관련 제도 신설로는 산재예방 효과 보다는 기업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만 추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실 최근 발생한 사고들을 돌이켜보면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세월호 사고가 그렇고 서울지하철 추돌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각 정부부처 소관의 안전규제는 수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그 많은 안전규제나 감독 기능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대부분의 사고들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전‧환경규제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그것이 바로 분노와 적개심만으로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럽연합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련지침을 만들고, 각 국가들은 이를 토대로 자국의 현실에 맞게 ‘집행 가능한 수준’에서 법을 제정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 일단 사고가 나면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주 강한 규제를 들이댄다.

작년에 많은 논란이 되었던 화학물질 평가등록법과 화학물질 관리법을 보면 얼마나 무책임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발의된 안은 화학물질 사고만 있으면 매출의 20%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했었다. 지나치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상임위에서는 10%로 했고 이 또한 말이 안 된다는 비판 때문에 법사위에서 마지막으로 매출의 5%로 조정되었다.

매출 5%라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을 감안할 때 그냥 문을 닫으라는 소리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지킬 수 있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법들을 국회는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단 며칠만에 뚝딱 통과시켰다. 두 개 법안 모두 구체적 시행을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는 상황이나, 전체 사업체 중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해당 법률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감정적 여론에 휩쓸려 무조건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규제들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규제로 탈바꿈시키는 고민 또한 필요하다. 안전환경 규제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법과 현실이 괴리된 비현실적인 규제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국민의 안전과 건강, 환경 모두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산업현장 안전의 1차적인 책임은 기업이다. 안전 최우선 경영이 필요하다. 얼마 전 경영계 스스로 채택한 결의문은 결의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결의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안전 최우선 경영을 위한 경영계 실천 결의문

경영계는 안전을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 안전경영을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하며, 근로자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첫째, 우리는 안전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CEO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안전을 최우선 경영요소로 삼아 안전경영을 실천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한다.

둘째, 우리는 안전을 위한 투자 확대 및 전문인력의 확충을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안전전담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한다. 셋째, 우리는 협력업체와 공생하는 안전관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업체의 안전보건관리 실태에 대한 점검 및 지원을 강화하고, 안전과 관련한 조치를 충분히 협력하여 수행한다.

넷째, 우리는 유지․보수 작업 중 안전과 직결된 업무(작업)는 직접 또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자가 수행하도록 노력한다. 다섯째, 우리는 사업장 전체 구성원의 안전의식 제고를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사고시 대응훈련을 생활화하는 등 안전문화 정착에 적극 노력한다. 여섯째, 우리는 범경영계 주도의 선제적 예방활동 추진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동 산재예방사업 및 대국민 안전의식 함양사업을 추진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