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몰입도 높은 IT서비스, 소프트웨어 업종 부작용
업종 특성에 맞춘 특례 적용 통해 산업 경쟁력 키워야
   
▲ 김영민 디지털생활부장
[미디어펜=김영민 기자]"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무제 여파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주가까지 빠지면서 때 아닌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요즘 게임업계에서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신작 출시가 지연되면서 경영상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자주 듣는다. 게임뿐 아니라 업무 몰입도가 높은 IT서비스, 소프트웨어 업종 등에서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52시간 근무제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처럼 직장인들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경우 야근이 많고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절대 반길 일이 아니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사 대표는 "업무의 대부분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고 개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야근이나 밤샘근무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근로시간이 단축돼 업무가 거의 마비 상태"라며 "인원 충원 등으로 추가 인력을 투입해보지만 이것 조차도 쉽지 않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IT서비스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부서는 발주처의 주문에 따라 근무시간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업종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발주처의 인식도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52시간 근무제의 부작용에 대한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게임업계의 경우 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시행한 근로환경 개선으로 신작이 차일피일 미뤄져 실적 부진에 빠지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게임사들에게는 신작을 언제 출시하는지 타이밍이 중요하다. 실적을 위해 출시 타이밍을 정하기도 하는데 필요에 따라 야근도 불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무시간 단축과 야근 금지로 주요 게임사들은 신작 출시가 줄줄이 연기되면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올 1분기까지 잘나가던 게임업체들은 2분기 실적이 악화됐고 하반기에도 회복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올 2분기 신작을 출시하지 못한 주요 게임사들은 기대 이하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넥슨은 매출이 반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70%나 감소했다. 넷마블도 영업이익이 40.8%나 줄었다.

특히 넷마블의 경우 기대작인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 출시가 4분기 이후로 미뤄졌고, '세븐나이츠2'도 연말에나 출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분당 티맥스소프트를 방문해 ICT 기업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 부진은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지만 신작 출시 지연이 결정타였다는 분석이다. 또 하반기 실적에는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사들은 신작 출시를 위해 강행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업체들은 현재 개발인력에 대한 충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핵심인력을 투입하기 쉽지 않은데다 개발인력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ICT 업계 특성을 고려해 근로시간 단축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ICT 업종은 서버 다운, 해킹 등 긴급 장애 대응업무에 특별 연장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ICT 업종 전반을 특례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실제 예외 적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업무의 몰입도가 높은 소프트웨어 개발업, IT서비스업 등은 특례 대상으로 지정돼야 한다. 업무가 몰릴 때는 근무시간을 늘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탄력적으로 근무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개선되도록 시장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송희경 의원은 이달 초 ICT 업계 특성을 반영해 특례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ICT 업종은 수시로 발생하는 긴급 상황, 업데이트, 신규 개발 등으로 업무량 변동이 크다"며 "획일적 법정근로시간제 도입으로 기업·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시장에서 도태되면 결국 피해는 근로자와 국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가 ICT 강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는 과감하게 없애고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귀울여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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