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선언'은 유엔군사령부 및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수순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여권(與圈)이 부산하다. 국회의장은 '4·27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 문제를 언급했고, 일각에선 '2030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방안을 논의하자는 소리도 나온다. 또한 평양 회담에 여야 의원이 동행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길게 잡아도 2~3주 내의 일인데 회담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북(北)의 눈치만 보더니 급기야 9월 5일에 특별사절단을 평양에 보내겠다고 한다.

여권의 이런 '평화 공세'에 대해 야당은 정부의 '경제 실책'을 '평화' 카드로 물타기 하면서 야당을 평화 반대 세력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 의원의 평양 동행 의견에 대해서도 야당은 국회가 "행정부 차원에서의 일에 곁가지로 따라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4·27 판문점 선언' 직후 대북방송 중단 및 장비 철거, 대전차 방호시설 철거 등에 이어 DMZ 내의 일부 GP(감시초소)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군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NLL평화수역을 조성한다며 외교안보 장관들이 백령도와 연평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의 이런 '평화 호들갑' 와중에도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 일주일 뒤인 지난 5월4일 한·미 양국에 대해 대북제재 해제와 사드 철수를 요구했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의 역사를 간단히 돌아보자.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방북 시 김정일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는 외신의 보도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남북간 첫 정상회담은 서방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던 북한 지도자에게 외교적, 경제적 돌파구를 제공하고 '햇볕정책'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평양 회담 후 김 전 대통령은 "이제 전쟁은 없고 평화가 왔다"고 선언하고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북한은 '햇볕정책'의 단물만 빨아먹으면서 제2연평해전(2002. 6. 29)과 같은 무장도발을 계속했다. 지난 4월 27일 발표한 판문점선언 전문(前文)의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라는 문구는 18년 전 "이제 전쟁은 없고 평화가 왔다"는 말의 되풀이일 뿐이다.

평양회담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실험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9월까지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했으며, 2017년 11월 29일까지 총 30여 회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한은 한 차례의 핵실험과 11차례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판문점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희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문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은 김 위원장이 "전 세계에 파격과 유머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었다"며 철없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말은 18년 전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는 김정일의 외교적 유머와는 차원이 다른 무례한 거드름이자 협박이다.

위의 김 위원장의 말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우리 대북특별사절단이 (평양에)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해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라고 답했다. 4월 27일 이후 청와대는 발 뻗고 자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와 같은 필부들은 남북간 ‘종전 선언’을 한다 해도 북핵 완전폐기 이전에는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계획 취소 등 미국이 핵폐기 관련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자 북한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민족끼리"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자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도 북한 석탄 밀수입 사건,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추진, 남북 철도와 가스관 연결 계획 등 북한 눈치보기에 전전긍긍하는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 행정부 일각에선 “한국정부와 대북정책 함께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지난해 대비 9.7%(41.7조원)가 증가한 470조5천억 원으로 대폭 늘리고 통일부의 북한과의 경협 기금과 남북 사회·문화교류 기금을 올해보다 각각 46%와 58.6%를 증액하고, 남북회담 추진 예산은 무려 104.3%를 늘렸다. 그러면서 북한인권재단 예산은 108억원에서 8억원으로 무려 92.6%를 삭감하는 등 전체 북한인권 관련 예산의 82%를 삭감해버렸다. 외교부도 종전선언과 평화체제와 관련된 예산은 늘리고, 북한비핵화 관련 예산은 깎았다.

   
▲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선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공동사진취재단

우리 정부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세계 역사가 입증하듯 평화협정이나 국제조약들이 평화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연합국간에 체결된 베르사유강화조약은 나치 독일의 배상 거부로 1933년에 파기됐고, 영-독 불가침조약(1939년)과 독-소 불가침조약(1939년)도 결국 2차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월남 평화를 위해 1973년에 체결된 '파리평화협정'은 미군과 한국군의 철수 후 1975년 월맹의 무력 침공으로 월남의 공산화통일로 이어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체결 '오슬로평화협정' 체결 이래 수 차례의 휴전/평화협정들을 체결했지만 지금도 군사적 유혈 충돌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2000년과 2007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각각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결국 북한의 핵개발 시간과 재원(財源) 벌기만 도와준 결과가 되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며 막가고 있는 나라와 그 나라의 눈치를 살피며 탈원전을 외치는 나라가 함께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제를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힘으로 북핵 폐기를 완결하기 전에 설령 남북간에 '종전 선언'에 합의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야말로 조공(朝貢) 바쳐가며 나라의 목숨을 부지하던 조빙사대(朝聘事大)의 역사가 되풀이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전(停戰)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정전이 다시 전쟁으로 번지면 유엔군이 즉각 동원된다. 바꿔 말해 '종전 선언'은 유엔군사령부 및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지는 수순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핵의 완전 폐기 없이 '종전 선언'을 한다면 우리 스스로 중국 및 북한의 무력 하에 종속되는 체제를 택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이고, 우리 정부가 '종전 선언'에 매달리는 이유인가?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To be prepared for war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means of preserving peace.)"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을 갖추지 못한다면 북한의 핵 포기와 강력한 한미동맹을 전제하지 않는 어떠한 선언이나 협정도 우리의 평화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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