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그 때는 몰랐다. 그냥 너무 기뻐서 좀 잘난 척하는 특이한 세리머니를 하는 줄 알았다. 최용수의 그 유명한 광고판 세리머니를 따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스무살 열혈 청년의 '일본 짓밟기'였다.

한국 축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일 열린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맞아 연장까지 가는 혈전 끝에 2-1로 이겼다.

태극전사 모두가 일본전 승리와 우승의 주역이었지만 승리를 부른 골을 넣은 선수는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였다. 0-0으로 맞서 승부를 알 수 없던 연장 전반 3분, 손흥민의 볼을 가로채(어시스트를 받아) 통렬한 슛으로 열리지 않던 일본 골문을 뚫었다.

   
▲ 사진=SBS 뉴스 캡처


이후 한국은 황희찬의 헤딩골이 보태졌고, 연장 후반 일본의 추격골에 잠시 뜨끔하긴 했으나 경기를 승리로 잘 마무리짓고 금메달 환호를 했다.

그런데 이승우가 천금, 만금같은 선제골을 넣고 펼친 골 세리머니가 눈길을 끌었다. 그라운드 외곽으로 뛰어간 손흥민은 동료들이 축하하러 몰려오자 손으로 자신을 혼자 두라는 제지 동작까지 하며 광고판 쪽으로 갔다. 그리고 광고판 위에 올라섰다.(처음엔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올라가는 수고까지 했다)

광고판 위에서 이승우는 드디어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마음껏 포효했다.

그냥 그림만 보면 1998년 월드컵 예선 때 최용수(현 SBS 해설위원)의 그 유명한 광고판 세리머니를 연상시켰다. 당시 최용수는 광고판을 헛디뎌 떨어져 더욱 화제가 된 세리머니였다.

이날 한-일 결승전을 중계하던 SBS 해설위원 최용수는 감격스럽게 이 장면을 지켜보며 이승우가 행여 자신처럼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승우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 그는 흥에 겨워 아무 광고판에나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의 접근까지 막으며 광고판을 콕 집어 골라서 밟고 올라섰다. 바로 일본 기업 광고판이었다.

일본은 늘 그렇듯 한국이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였다. 특히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에서 만났다. 이승우는 꼭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대표팀은 결승을 앞두고 한국을 자극하고 도발했다. 21세 이하 대표팀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한국은 23세 이하 대표팀 아니냐며 자극했다. 자신들은 해외파가 한 명도 없다는 점도 일부러 강조해 와일드카드 손흥민 등 해외파가 다수 포함된 한국을 도발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이길 수 있다며 큰소리도 쳤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이런 일본을 시원하게 혼내줬으면 좋았는데 전후반 90분 동안 좋은 기회들을 놓치며 득점 없이 연장전으로 넘어간 경기였다. 한국의 답답함을 이승우가 통렬한 골로 뚫어줬다.

그리고, 이승우는 일본 광고판을 밟고 올라서 '대한민국 스무살 이승우가 일본 21세 팀을 밟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듯 포효했다.

그렇게 이승우는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던 세리머니를 완성한 후에야(최용수의 세리머니와 비교될 그림 하나 잘 만들어놓고) 동료들의 품에 안겨 마음껏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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