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을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요구한 ‘북미 동시행동’은 주고받기 식, 즉 단계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이끌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동시행동 원칙’을 말하면서 앞서 북한이 조치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에 상응하는 미국의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미국이 종전선언을 수용하지 않아 북미협상이 막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서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변한 게 별로 없다”는 주장과 “북미대화 재개에 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먼저 긍정적으로 볼 때 이번 특사단의 방북 전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졌고, 특사단이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를 전달받은 김 위원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으며 특사단은 다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정 실장은 귀환 다음날인 6일 저녁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이 메시지를 미국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볼 때 이번에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를 원한다는 점이 재확인됐고, 더구나 북미간 이뤄져야 할 다음 조치로 미국의 종전선언을 지목했다. 지금의 교착 상태와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물질 신고 리스트와 시한 등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종전선언부터 주장해 북미협상이 이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오는 18일 남북정상회담에 나설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다지는 것은 물론 북미대화에 추진력을 실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문 대통령의 최대 목표는 4.27 판문점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므로 북미간 비핵화 협상 조율도 견인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치프 네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수석 협상가) 역할을 주문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11월 미국의 중건선거 이전에 비핵화에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특히 미국이 ‘비핵화 진행보다 남북관계가 빠르게 밀착하면 곤란하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은 남북경협에서는 속도조절도 해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 전에 두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으로서는 김 위원장이 이번에 우리 특사단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라는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 실장은 귀환 다음날인 6일 언론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북미가 70년간의 적대적 역사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내’는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한 것으로 긍정적인 신호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언급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방식의 북미간 대화에 동의하고 있다는 신호가 되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비핵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즉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여전히 대화를 이어가면서 비핵화 협상도 진행시킬 의지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므로 향후 미국이 실무협상 재개가 가능하다고 판단할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도 열려 있다. 북미간 비핵화 워킹그룹이 가동된다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 조치는 속도를 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의 태도를 볼 때 종전선언을 위해선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는 물론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도 그 이후에 대해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종전선언만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홍민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 그 자체가 비상식적이거나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북한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비핵화 조치가 있고, 미국도 그 조치에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면 종전선언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모든 조치에서 믿을 만한 검증 조치를 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핵‧미사일은 물론 핵시설도 포함되며 이번에 김 위원장이 말한 풍계리‧동창리 실험장 역시 미국 입장에서는 검증 대상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이런 조치들의 의미를 잘 몰라준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이번에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는 상관없다’고 한 말도 신뢰회복에는 그다지 효력이 없어 보이며, 이제 북한이 종전선언을 바란다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 수순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북미협상 결과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반영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도 특사단 파견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