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표현에 북이 강한 거부감" 발의…통과시 北 납북책임 사라져
   
▲ 사진은 2011년 6월7일 열린 '6.25 납북희생자 기억의 날' 행사에서 납북자 가족이 꽃을 올리며 오열하는 모습./사진=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홈페이지 제공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북한에 끌려간 민간인의 법적 명칭을 '납북(拉北)자'가 아닌 '실종(失踪)자'로 바꾸어야 한다는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법률 개정안 2건에 대한 논란이 계속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단법인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등 납북자 가족들은 범국민규탄대회를 매주 열며 "납북자가 없고 실종자만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북한에게 납북자 강제 억류에 대한 책임을 물을 길이 사라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대로라면 납치 주체가 되는 북한을 추궁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납북자에 대한 명예회복 및 지원도 근거가 희박해진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법안인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자들은 대표발의자인 송갑석 의원을 비롯해 권칠승·김병관·박광온·박정·박홍근·신경민·심재권·안규백·이수혁·이훈·정재호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이다.

이들은 개정안 제안이유로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단어"라며 "장관급 회담 등 남북 실무회담에서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납북자 표현을 전시실종자로 변경함으로써 법률상 용어로 인한 남북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은 납북자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1953년 7월27일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후 본인의 의사에 반해 남한에서 북한에 들어가 거주하게 된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당 법들은 각각 2010년 및 2007년에 제정된 것으로, 전자는 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의 피해를 수집하고 가족 등 지위를 국가가 확인해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근거 법률이고, 후자는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 후 발생한 강제 납북 피해자에 대해 유족과 귀환 납북자 등에게 보상 지원하는 법이다.

두 법률에 의거해 지난해까지 4777명이 납북자로 인정됐고 보상 425건이 인정되어 위로금으로 145억 원이 지급됐다. 학계에서는 6.25 전쟁에서 납치된 전시납북자가 최소 8만 명 이상이며 최대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률개정안 논란은 고소 등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달 14일 송 의원을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송 의원은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4기 의장 출신으로 참여연대 운영위원 및 노무현재단 지역운영위원, 문재인 대통령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후 지난 6.13 재보궐 선거에서 광주 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송 의원은 당선 후 2달 만에 이번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가족협의회는 대검 고소 후 기자회견을 통해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관련 법안을 당장 철회한 후 10만 전시 납북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며 "북한은 6.25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납치 범죄를 부인하면서 실향민이나 실종자라는 용어를 고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일 협의회 이사장은 "국내법으로 납북자라는 단어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이고 이는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존재를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협의회는 범국민규탄대회에서 "납북사건이 얼마나 기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라는 사실인지 알리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지난 20년간 해왔는데 실종자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라며 "북한이 싫어한다고 눈치를 보나. 대한민국이 북한에 종속된 노예국가인가"라고 절규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송 의원의 법률개정안에 대해 "북한 김정은 정권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납북자 문제를 법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용어의 정의를 바꾸자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이 자행한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입법기관으로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 2건 모두 국회 외통위 관할이다. 송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 12명이 북한에 생존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납북자 가족들을 고려해 향후 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 사진은 2011년 6월7일 열린 '6.25 납북희생자 기억의 날' 행사에서 참석한 납북자 가족들의 모습./자료사진=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홈페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