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인 9일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공화국 창건' 70주년 경축 열병식과 평양시 군중시위가 진행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리잔수 중국 상무위원장과 손을 잡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비행편대가 창공에 70을 그리는 곡예비행을 하고 잇다./노동신문 캡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은 9일 정권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국을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 중거리미사일도 선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에 참관했지만 연설을 생략해 철저하게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지어 북한은 통상 생중계로 보도하던 열병식을 다음날인 10일 오전 녹화영상으로 내보냈다. 생중계하지 않으면 당일 저녁 녹화영상을 보도해온 관행을 깬 것으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참석한 리잔수 중국 상무위원장과 친밀함을 과시하면서 우방국으로서의 중국을 부각시켰다. 

북한군 열병식에 ICBM 등이 빠진 것은 아무래도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앞으로 재개될 북미협상을 염두에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열병식 주제가 평화와 경제개발이었다”며 “우리 둘은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빈은 물론 외신기자들을 대거 초청해 치룬 북한군 열병식을 조선중앙TV가 다음날 오전 녹화영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앞으로 예정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타협할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 본부장은 “북한이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된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열병식에 ICBM을 가지고 나오지 않음으로써 향후 남북 및 북미 협상에서 북한의 ICBM의 폐기 및 해외반출 문제가 우선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또 그는 지난 5일 대북특사단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북한이 2020년 여름까지 ICBM과 핵탄두를 4단계에 나누어 폐기하고 각 단계별로 한국과 미국이 제재 완화와 안전보장 제공 등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이 관련국들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타협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본부장은 “(최소한) 북한이 올 연말까지 보유한 ICBM의 50% 정도를 우선적으로 폐기하고 내년 여름까지 나머지 50%를 폐기하겠다고 한다면 미국도 연내 종전선언을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은 다만, 이번 열병식에서 지난 2월 북한군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동원된 규모인 1만2000여명보다 약간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 군사력을 과시했다. 특히 자주포·장갑차와 함께 지대공 유도미사일 ‘KN-06’(번개 5호) 등 신형 재래식 신무기를 선보였다.
  
152㎜ 장갑차와 대전차 로켓 및 이를 탑재한 장갑차, 신형 152㎜ 자주포는 2.8 북한군 창건 70주년 때에는 안 보였던 무기이다. 8연발 대전차 로켓 및 이를 장착한 신형 장갑차 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체무기’로 분류되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부는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전날 실시된 북한군 열병식과 관련해 탄도미사일을 등장시키지 않은 전략적 의도에 대해서는 분석 중에 있다”면서 “또 새롭게 등장한 재래식 전력에 대해서도 좀 더 추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통일부와 국방부는 ICBM이 빠진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 많은 외신들이 ‘수위조절 했다’는 보도를 한 것을 언급하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정착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좋은 메시지를 보여준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이번에 북한은 최대한 중국과의 밀착관계임을 과시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리잔수 중국 상무위원장을 접견한 김정은 위원장은 “조중(북중) 두 나라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인 조중친선을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정부의 확고한 선택이고 절대불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습근평(시진핑) 동지와 이미 합의한대로 고위급 래왕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여 그 누가 건드릴 수 없는 특수하고도 견고한 조중관계를 보다 굳건하고 심도 있게 발전시켜나가자”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9.9절 중앙보고대회에서는 ‘경제’가 강조됐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날 보고를 맡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당이 제시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혁명적인 총공세, 경제 건설 대진군을 다그쳐나가야 한다”며 “자력갱생의 혁명 정신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을 힘있게 벌여 경제 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며 과학기술 강국, 인재 강국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공화국 정부는 앞으로도 북남관계 개선과 조국 통일을 위하여, 조선반도(한반도)의 영원한 평화와 안정, 정의로운 새 세계 건설을 위하여 계속 힘차게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열병식 주석단에는 리명수 전 북한군 총참모장, 무함마드 압델 아지즈 모리타니 대통령, 김영남 상무위원장, 김정은 위원장, 리잔수 상무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쿠바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박봉주 내각총리, 시리아의 힐랄 알 힐랄 아랍사회부흥당 지역부비서, 리수용 당 부위원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 등 북한 최고위 간부들과 고위 외빈들이 번갈아가며 앉았다.

중국 방북단에 포함된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주석단 한쪽에 앉아 있었고,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주석단 뒤편을 오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난 2월 건군절 열병식에 참석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는 이날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