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미스터 션샤인'이 24회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구한말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불꽃같은 삶을 산 여러 인물들의 사랑과 희생, 애국 등 묵직한 주제를 영화 이상의 웅장한 스케일로 그려낸 '미스터 션샤인'은 오래 갈 깊은 여운을 남겼다.

9월 30일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 최종회에서는 남자 주연 트리오 이병헌, 유연석, 김요한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시청자들은 울다가, 울다가, 또 울었다.

이미 예견됐던 새드엔딩이었다.

   
▲ 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 캡처


유진 초이(이병헌)는 조선으로 돌아와 고애신(김태리)을 지키기 위해 결국 의병 활동에 가담하게 됐고, 만주로 가던 기차 안에서 일본군의 추적을 받은 김태리를 구하고 장렬히 생을 마감했다. 유진 초이는 죽음을 앞두고 고애신에게 "슬퍼하지 마시오. 이건 나의 히스토리이자, 러브스토리요"라며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물러나니"라는 말을 남겼다. 

구동매(유연석)는 쿠도 히나(김민정)를 가슴에 묻은 뒤 자신의 생도 정리했다. 고애신을 마지막으로 만나 자신의 방식대로 이별을 하고, 무신회와 마지막 혈투를 벌여 한 명이라도 더 일본 낭인들을 벤 후 쓰러졌다. 눈을 감기 전 구동매는 "제가 애기씨 생애 한 순간만이라도 가졌다면 이놈은 그걸로 된 것 같습니다"는 독백을 했다. 

김희성(김요한)은 일본군의 학살 현장을 사진 찍고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호외를 발간하며 자신만의 항일 투쟁을 벌이다 체포됐다. 일본군이 혹독한 고문을 하며 의병들과 한 패 아니냐고 다그치자 김희성은 "황은산(김갑수) 고애신과 한 패로 묶인다면 영광이요"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고애신만 살아남아 만주에서 의병 양성을 하며 "우리는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 다시 뜨겁게 타오르려 한다"고 의지를 드러내면서 "잘 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see you again"을 외쳤다. 

고애신을 사랑했던 세 남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분명 새드엔딩이다. 주인공들이 이른 나이에 각자 한을 남기고 죽었다. 고애신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미스터 션샤인'은 새드엔딩이 아니었다.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 것, 일본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고통받고 수탈당한 것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 자체를 새드엔딩이라 할 수 없다.

이 드라마는 그 잔혹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처절한 '러브스토리'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아무도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새드엔딩인가?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이 각자 고애신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려 보자. 

유진 초이는 미국의 정보를 팔아먹던 자를 처치하려다 같은 목적으로 나타난 고애신과 우연히 만났다. 자신의 부모를 죽게한 조선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직 살아남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군인이 됐던 유진 초이다. 고애신과 첫 만남이 당혹스러웠지만 자기 주관과 신념이 뚜렷하고 강인한 이 여성에게 운명적으로 끌렸다. 그는 고애신과 'LOVE'를 하며 이 여인을 위해 모든 인생을 걸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제 그렇게 했다.

구동매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애기씨'로 고애신을 처음 만났다. 생명의 은인에게 첫사랑의 연정을 품게 된 구동매는 일본의 낭인이 돼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어렸을 적 첫 만남 때 고애신에게 품은 순정적인 사랑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거칠고 서툴긴 했지만 구동매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자신만의 사랑을 했다.

김희성은 정혼자였던 고애신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외모에 끌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애신을 보면 볼수록 자신과는 전혀 다른 주체적인 삶을 사는 그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졌다. 고애신이 이미 유진 초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로는 스스로 파혼의 아픔을 감수하며 물러섰고, 마치 후견인이라도 된 듯 고애신이 어려울 때면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역시 가슴 아픈 외사랑을 했던 것이다.

   
▲ 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 캡처


'그런데 다 죽지 않았냐'고, 새드엔딩이 못내 서운한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반문해 본다. 목숨까지 던질 각오로 누군가를 불꽃처럼 사랑해본 적이 있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비록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지라도)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거나 이타적인 결단을 내려본 적이 있냐고. 유진 초이, 구동매, 김회성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각자 자신의 사랑은 완성한 것 아니냐고.

살아남아 의병 활동을 이어간 고애신이든, 나름대로 항일 투쟁을 벌이다 가슴 아프게 떠난 세 남자와 쿠도 히나든, 이들이 남긴 발자취와 곳곳에 흩뿌린 불씨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전철이 되고 가슴속에서 거센 불길로 타올랐을 것이다. 이 또한 '미스터 션샤인'이 새드엔딩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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