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 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경거망동 하지 마라. 태산같이 무겁게 침착하라.' 저는 성웅 이순신의 이 일성이 그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해준다고 봐요. 저에게는 이 말이 태산같이 와 닿았습니다. 수많은 적 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을 연기해야 했으니까, 어마어마한 난관에 부딪힌 것이죠."

배우 최민식(52)이 '신세계'(감독 박훈정)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다. '최종병기 활'로 747만 관객을 불러들인 김한민(45) 감독의 새 영화 '명량'을 통해서다. '명량'은 1597년(선조 30) 9월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신화적 전투인 명량대첩을 다룬다. 최민식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성웅' 이순신 역을 맡았다.

최민식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실상부 간판 배우다. '파이란'(2001) '취화선'(2002) '올드보이'(2003) '악마를 보았다'(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의 전성시대'(2011) '신세계'(2012) 등에서 그는 말 그대로 '태산'같이 연기했다. 이런 그가 진짜 태산과 맞부딪혔으니, 그게 바로 이순신이다. 천하의 최민식이 "막막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분이 어떻게 이런 신념을 지니게 된 건지 궁금했던 거죠. 하지만 그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저 자신이 초라해지고, 뭐랄까 '혹시 누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이잖아요. 이분의 그 거대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또 표현해야 할지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분의 강직함, 전쟁에 임하는 태도, 군인정신 이런 것들이요."

최민식은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명량'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순신 장군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표현하기보다는 영웅의 모습 이면에 인간 이순신에 접근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 최민식/뉴시스

최민식과 김한민 감독은 남도 음식점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둠전에 소주를 마시면서 영화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민식은 "김 감독이 이순신의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필요한 영화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영웅을 연기하기 위해 최민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촬영 전 배우와 감독, 전 스태프는 씻김굿을 올렸다. 임진왜란 때 시작된 진도 지방의 특유의 굿이다.

"피아를 떠나서 예를 갖추고 싶었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된 전투잖아요. 가공된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을 연기할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취화선'을 찍을 때도 그랬죠. 힘든 촬영이 될 테니까 사고 없이 마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도 있었죠."

예상은 했지만 촬영 현장은 "전쟁터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30년 넘게 연기했지만 최민식은 이 영화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 많았다. 고증에 따라 충실히 복원한 30m 길이의 판옥선을 짐벌 장치 위에 올려 놓고 그 위에서 연기하는 일은 도전이었다. "물리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 그래픽도 생각해서 연기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또 "액션의 비중이 크다 보니 부상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연기해야 했던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명량'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남짓, 명량대첩이 그중 61분을 차지한다.

'명량'은 그 어떤 영화보다 고증에 신경 쓴 영화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의상을 만드는 데만 1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배우들이 입은 갑옷은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돼 무게만 20㎏이 넘는다. 최민식은 "갑옷을 입고 벗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종일 갑옷 입고 촬영 마치고, 다음 날 새벽에 다시 그 갑옷을 입으려고 하면 어후, 참 답답하더라고요.(웃음)"

최민식은 제작보고회 첫 인사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말하며 감격에 찬 얼굴을 보였다. "설레고 두렵고,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최민식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은 영화 '명량'은 7월30일 개봉한다. 최민식을 비롯해 류승룡, 조진웅, 진구, 이정현, 권율, 노민우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