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국사학·TV드라마 합작의 민족주의 열기
실패한 대한제국 분칠한 '미스터 션샤인'도 문제
   
▲ 조우석 언론인
조선시대사 핫 코너의 하나가 18세기다. 조선후기 그때를 문화의 황금시대로 포장하는 엉뚱한 흐름이 지난 20년 국사학계에서 완성됐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당시를 진경시대(眞景時代)라고 호언한다. 겸재 정선 등의 진경산수화란 용어를 대폭 확장한 용어인데, 조선후기 전체가 우리 고유의 색을 완성한 황금시대였다는 황당한 논리적 비약이다.

말도 안 되는 그런 헛소리가 어느새 국사학계 전체의 정신착란으로 발전했다. 그들이 18세기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증거다. 다산 정약용 등 실학사상도 이때 아니던가? 뭐 그런 식이다. 누가 봐도 과도한 역사 부풀리기 즉 '국뽕'이지만, 저들의 눈귀는 이미 멀었다.

왜?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민족-민중-민주지상주의라는 1980년대식 운동권 마인드로 오염된 탓이다. 그런 집단심리 속에 이미 저들은 조선 초 세종을 애민정치를 실현한 군주이며, 민주주의 원류로 치켜올릴만큼 제정신이 아니다. 조선 초가 훌륭했고, 18세기 역시 황금시대라고 치자. 그럼 19세기 역사실패는 어찌 설명할까?

   
▲ 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홈페이지

국뽕, 조선-일제시대 이어 대한제국을 삼켜

구한말 쇄국주의 그리고 허장성세의 대한제국 타령 13년 끝에 식민지 전락…. 변명할 여지없는 파국 중의 파국인데, 놀라지 마시라. 어느 순간 대한제국조차 멋지게 포장하는 '국뽕 신공'을 발휘했다. "신문물을 받아들여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근대국가의 출발점"이라는 식이다.

그 표현은 중앙일보(9월 29~39일 24면) 인용이다.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종영을 앞두고 입에 거품을 문 것인데, 이게 명백한 역사조작 행위란 걸 저들만 잘 모른다. 조선일보도 그렇다. "충돌과 격변의 시대…대한제국과 그 황궁(皇宮)이 돌아왔다"(9월28일 A20면) 드라마 성공 전후 덕수궁 복원도 순조롭고, 대한제국 재조명이 활발해졌다는 자화자찬이 낯 뜨겁다.

맞다. 지난 몇 개월 이 나라에 이상기류가 실로 심각하다. 국사학-TV드라마의 합작의 역사 판타지 완성인데, '국뽕의 꽃'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난 구역질을 참을 수 없다. 망국으로 이어진 대한제국을 "근대국가의 출발점"이라고 거짓말을 해대니 마음 편할 리 없다.

TV드라마 속에서는 양반 규수 출신의 의병 고애신(김태리)을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게 그리며 민족주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당연히 엉뚱한 반일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우며, 망한 나라 대한제국 사랑으로 우린 요즘 날 샌다. 다음은 최근 한겨레가 쓴 '미스터 션샤인' 리뷰 기사의 일부인데, 대한제국 부활 이후 앞으로가 더 요란한 것임을 예감케 한다.

"고애신이 포함된 의병들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하고,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총을 들었다. 무장한 일본군 앞으로 질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감내하며 전진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나는 감히 예상한다. 무지막지한 국뽕 주사를 맞은 한국인은 끝내 망가질 것이고, 끝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증거가 있다. 지난 몇 년 스크린에서 '암살', '밀정', '동주',  '박열' 등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번엔 구한말로 대폭 확장됐고 그걸 기점으로 국뽕 민족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대한제국만 아큐(阿Q) 식의 정신승리로 포장한 게 아니라 저들은 조선시대 전체를 집어삼킨 지 오래다. 영화 '관상', '명당'에서 '조선명탐정', '광해, 왕이 된 남자', '군도-민란의 시대', '최종병기 활' 등 부지기수는 시대착오적 국뽕으로 분칠하거나,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TV드라마-영화-게임 등 이야기 산업에서 존재가치가 없다.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금기다. 왜? "태어나선 안 된 나라"라는 운동권적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로 할 경우 반(反)대한민국, 반체제적으로 멋대로 비틀고 손가락질한다. '공동경비구역JSA', '변호인', '남영동 1985', '1987', '택시 운전수', '화려한 휴가'….

   
▲ 영화 '암살'과 '동주' 포스터.

민족지상-민중지상-민주지상주의 3중주

유감천만이다. TV드라마-영화-게임에 파고든 국뽕, 구체적으로 민족지상주의-민중지상주의-민주지상주의의 3중주가 지금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나는 직감한다. 그게 국가정체성을 해체한다는 문재인 정부 시절과 겹친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 구조를 꿰는 이가 많지 않다.

뜻밖에 원로 법조인 김인섭 변호사(83, 태평양 창립자)가 그 구조를 논파한 바 있다. "(근)현대사를 민족중심주의로 해석하다 보니 조선 망국이나 남북분단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고 우리 내부의 잘못이나 약점은 외면하고 호도하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64쪽) 그가 쓴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2016년, 영림카디널)에 나오는 구절이다.

때문에 그의 지적대로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게 맞다. "역사학의 초점은 19세기 말 조선왕조의 패망(규명)과 20세기 말 대한민국 번영(에 대한 설명)이라는 극적인 반전에 맞춰져야 한다."(419쪽) 그걸 그는 국가발전사관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민중-민주지상주의의 3중주와는 전혀 다르다.

내 판단은 이렇다. 국가공동체를 흔들려는 의도 아래 민족주의를 들고 나온 세력이 이 나라에는 존재한다. 그게 1980년대 이후 좌익 운동권이다. 그럼 민족지상주의를 모토로 한 국사학은 무엇인가?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운동권 숙주(宿主)에 기생하는 바보다. 그렇게 운동권과 국사학 그리고 TV드라마-영화 등이 합세해 어느덧 민족주의를 시민종교 차원으로 키웠다.

그래서 이 나라 대통령은 민족주의교의 총회장이고, 민족주의교의 부흥목사가 바로 TV드라마-영화라고 봐야 한다. 그들이 지금 국뽕이란 이름 아래 우리 공동체를 망치고 있다. 다음 회 관련 칼럼을 한 번 더 써서 그 구조과 내력 모두를 밝히려 한다. 두루 관심 바란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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