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한미 일치된 대응·긴밀한 공조" 원칙 재확인 vs 북중러 '상응조치로 제재 완화' 공동발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미국 재무부가 9·19 남북평양선언 직후인 지난달 20~21일 국내 국책·시중은행들에게 직접 연락해 '제재 준수'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트럼프 미 행정부가 우리나라의 대북제재 이행에 대한 단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제재조치 해제 검토' 번복에 이어 불거진 이번 논란은 이례적이다.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이 직접 국내 금융기관들과 영상·전화회의를 갖고 대북사업 현황을 상세히 물으면서 '앞서가면 안 된다. 제재 위반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에 국내은행 참석자들은 '제재 틀을 인지하고 있고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준수하겠다'고 답했다.

아시아에서는 호주와 일본이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갖고 북한에게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는 등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모든 동맹국들이 동참하고 있지만, 북한·중국·러시아는 지난 9일 모스크바에서 3국 차관급 회의를 갖고 '비핵화 상응조치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내 300여개 기관과 개인들이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면서 대북 합작사업을 벌인 의혹이 드러났지만,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 제재 결의를 놓고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와 공개적으로 충돌할 정도로 북한의 경제적 고립을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 국무부는 11일 "미국과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은 일치된 대북 대응을 위해 긴밀히 공조하는데 전념하는 중"이라며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국이 제재 대열에서 이탈해 중러와 함께 제재 뒷문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미 재무부는 이와 관련해 해외자산통제국(OFAC)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의 북한 정보란에 '세컨더리제재(북한과 거래한 제3국 개인이나 기관도 처벌) 주의'라는 문구를 지난 4일 추가하기도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남북관계 진전을 둘러싸고 한국의 '과속'에 대한 미국측 이견이 표면화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승렬 한국외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은 핵 폐기 없이 유화적 이미지와 적극적 외교, 남북교류 확대를 통해 미국 군사행동을 예방하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지지와 지원을 끌어낸다는 전략"이라며 "북미 중재에 전력을 기울여온 한국은 대북제재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미간 제재 의견에 분열이 생겼다. 최대한의 압박이 끝났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고,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대북제재 해제 움직임은 미국의 비핵화 협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강경화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번복 논란 후 열린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로버트 팔라디노 부대변인은 "한국과 미국은 서로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에 여러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해 대북제재에 대한 이견이 있음을 시인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10년이고 100년이고 제재를 하겠으면 하라. 그 어떤 제재도 뚫고 사회주의 낙원을 세우겠다"며 "적대세력들은 살인적인 제재 봉쇄를 최후 수단으로 삼고 있다"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의 금융거래 주의보에 북한은 7년 연속 '대응 조치'가 필요한 유일한 나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제재 준수에 대해 사실상의 경고장을 날린 미측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향후 대북 관련 사업들을 어떻게 검토하고 추진할지 주목된다.

   
▲ 미 국무부는 11일 "미국과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은 일치된 대북 대응을 위해 긴밀히 공조하는데 전념하는 중"이라며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사진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5월11일 워싱턴DC 국무부청사에서 진행한 공동기자회견 모습./외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