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역할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을 놓고 대북제재 완화에 단호한 미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프랑스가 대북제재 완화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빠졌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언급하며 완고함을 드러냈다. 그는 “프랑스는 무엇보다 비핵화가 완전하고 불가역적 검증가능해야 한다는데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지만 이날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선언에서도 ‘주요 글로벌 현안’ 항목에 ‘양 정상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라는 문장이 적시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드러낸 배경에는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 완화를 준비하며 유럽연합(EU) 내에서 입김이 센 프랑스의 지지를 얻고 싶어했으나 프랑스는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존중하는 입장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프랑스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공인한 핵보유가 허용된 국가이기도 하다. NPT에서 탈퇴하면서 핵사찰을 받지 않아왔던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과거 비핵화 합의를 수차례 파기한 전력이 있는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가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선뜻 문 대통령의 제재완화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EU 중 에스토니아와 함께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두 나라 중 한 곳으로 실제로 그동안 북한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완고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오고 계시는 데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저희는 무엇보다 평양의 구체적인 어떤 공약을 기대하고 있다. 비핵화와 미사일 계획을 폐지하기 위한 프로세스에 실질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실제적인 어떤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청와대


그러면서 “그때까지는 저희가 유엔의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를 계속해야 할 것이고, 프랑스는 무엇보다도 전세계적인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핵화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이고 검증 가능한 이러한 CVID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대북제재 완화 발언을 한 것을 놓고 향후 국제사회 설득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종전선언만 언급해온 문 대통령이 정상외교 무대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언급함으로써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한국이 원하는 바를 확인시켜주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앞으로 문 대통령은 이번 유럽 순방을 계기로 오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아셈정상회의(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영국과 독일, 태국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으로 특히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났을 때에도 대북제재 완화 요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속한다. 이미 5차례 비상임이사국을 지낸 독일은 내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20년까지)으로 선출돼 있다.   

하지만 지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전후로 미국과 한미공조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상황에서 메이 총리나 메르켈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 발언을 뛰어넘는 반응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신뢰 구축만 강조하다가 국제사회에서 ‘북한 편들기’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국무부는 이미 남북이 15일 고위급회담을 갖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에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밝힌 대로 남북의 관계 개선 문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것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우리의 승인없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미 재무부는 이달 초 대북제재 대상 리스트에 ‘세컨더리 제재 리스크’ 문구를 추가해 북한과 직접 거래하지 않더라도 제3자를 통한다면 제재가 부과될 수 있음을 재차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