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종전선언을 주장해온 북한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자신들의 매체를 동원해 제재해제론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6일 “우리가 핵시험을 그만둔 지도, 대륙간탄도로켓 발사를 중지한 지도 퍼그나(퍽) 시일이 흘렀으면 응당 이를 걸고 조작한 제재들도 그에 맞게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난 7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재 해제’를 주장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상응 조치를 우선 취해야 핵 리스트 제출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침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순방을 계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한 것과 맞물리면서 향후 북미간 쟁점이 기존의 종전선언에서 ‘제재 완화’로 옮겨갈 것인지 주목된다.

우선 이달 안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에서도 제재 해제가 주된 의제가 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들고 나온 것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성사되면서 종전선언이 조금씩 가시화되자 빠르게 과녁을 옮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최근 최선희 부상이 참석해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 열린 북중러 3국 외교차관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3국의 공조가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 아울러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북제재가 대미 불신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며 부당성을 집중 성토한 바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을 때”라는 단서를 달아 제안한 “대북제재 완화에 프랑스가 나서달라”는 요청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는 무엇보다 비핵화가 완전하고 불가역적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데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북한 비핵화 조치에 완고함을 보였다. 

이후 미국 국무부도 16일(현지시간)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했던 것이 이 순간까지 이르게 했으며, 이 과정의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도 제재의 완전한 이행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제재 완화는 비핵화 이후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매우 명확히 했으며, 비핵화에 빠르게 도달할수록 제재도 더 빠르게 해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0월7일 4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공식트위터


결국 문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말한 대북제재 완화 요청은 미국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북제재 완화 시점은 미국 의회 내부에서는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조율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선거를 끝내고 나서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된 사안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제재 완화 흐름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지만 문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미국을 제외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을 만나 대북제재 완화 얘기를 꺼낸 것에 대해 성급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제 북한이 바라는 대로 제재 완화가 북미간 협상 테이블에 오르려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선 조치로 무엇을 내놓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비건 특별대표와 최선희 부상간 실무협상 날짜가 여전히 확정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앞으로 두어달 내에 북미 정상회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이는 바로 북한의 선 조치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성폭력 의혹에도 불구하고 상원에서 인준안이 통과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15명을 미 상원이 거듭 인준해 공화당에 정치적 승리를 안기면서 혼전 양상을 더해가는 미국 중간선거 결과도 향후 북미 협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정구연 교수는 “문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완화 얘기를 꺼낸 것은 남북경협에 속도를 내기 위한 절실함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진 만큼 북한의 가시적인 비핵화 진전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