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속도전’을 치루듯이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은 남북협력 확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또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지연되는 상황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방한 추진을 위한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서 평양공동선언의 모체격인 판문점선언의 비준동의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만 정부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법제처의 해석을 받았다.

청와대는 “아직 재정이 들어가지 않는 원칙과 방향을 세운 선언적 합의이고, 평양공동선언이 판문점선언 후속조처이지만 독자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번 문 대통령의 비준으로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판문점선언의 국회통과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굴종적인 대북정책에 경도돼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개탄했고, 바른미래당도 “김정은 위원자오가의 직통전언에만 신경쓰지 말고 야당과도 직통전화를 놓았더라면 순서가 꼬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볼 때 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서두른 데에는 남북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산림협력회담에서 북측 단장이 ‘외풍에 흔들림없어야 한다’고 말하며 불만을 표출한 것처럼 북측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때문에 경제협력에 속도가 나지 않는 것에 대해 남측을 압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유럽순방 기간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공식화했지만 사실상 외면을 받은 상황에서 당초 계획대로 연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성사시키고 남북 정상이 또 한번 ‘서울선언’ 채택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근거인 평양선언을 법제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가 지난주 예고한 ‘10여일 이내 고위급 회담’ 개최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미협상에 정통한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는 23일(현지시간) “북미가 고위급회담에 대해 계속 협의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아직 날짜와 장소는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북한에서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9일 멕시코 방문 도중 미국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하면서 "열흘쯤 안에(in the next week and a half or so) 나와 북한 측 카운터파트 간 고위급회담을 '여기'에서 갖고 비핵화 논의가 큰 진전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나설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도 확인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김 부부장이 최근 많은 중요 회의에 참석하고 있어 당장 준비해서 (북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를 방문 중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현지시간) 현지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1월1일 이후에 미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당초 미국 중앙선거 이전에 조기 개최될 것으로 보였던 북미정상회담은 점차 예상 시점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북미정상회담이 곧(quite soon) 열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후 7일 방북했던 폼페이오 장관은 귀환 이틀만인 9일 “11월6일 중간선거 이후 열릴 것”이라며 시기를 뒤로 미뤘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북회담 성과를 장담할 수 없어 중간선거 이후로 밀린 미북정상회담에 당장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영변 핵실험장 폐기카드로 대북제재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미국이 핵리스트 신고로 맞대응하고 있는 등 협상판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장지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