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 투입만으로 서비스 향상 기대 어려워…시장간 경쟁 유도해야
   
▲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정부와 여당이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국공립 유치원을 40% 수준으로 확대하고, 민간시설에 대해 국가회계시스템 사용을 강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내년까지 국공립 유치원 500개 학급을 신증설하려는 목표를 2배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정책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민간영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간과 정부의 합리적인 역할배분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정책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에서 시작됐다. 그 이전에는 유치원이라는 것은 극소수 부유층만의 전유물인 이른바 '금수저 학교'였다. 전체 아동 중 1%만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정부는 유치원 시설의 확대를 원했지만 재원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민간을 끌어들였다. 정부의 재원이 부족하니 민간자본이 자발적으로 유치원 시설에 투자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정책적 편의를 준 것이다. 그렇게 유치원 정책은 정부와 민간이 적당히 역할을 배분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번에 발표된 '유치원의 공공성 강화'라는 정책목표는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공공성은 국유화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공공성을 내세워 국공립 시설을 확대하겠다는 현 정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공공성을 앞세워 민간부문의 규제를 확대하는 정책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국공립 시설은 본질적으로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치원 서비스가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경제 환경에 탄력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기 보다는 정부에서 만든 서비스 규정집에만 충실할 뿐이다. 유치원 부모들이 원하는 시설과 교과과정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 의장(오른쪽 세번째)이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조승래 교육위 간사, 김태년 정책위의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춘란 교육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반대로 민간부문에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한다. 항상 부모들이 원하는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시설운영에 반영한다. 이는 곧 부모들이 원하는 양질의 유치원 서비스를 민간시설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민간 시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민간 영역을 국공립 시설과 같은 형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질은 정부가 돈을 쏟아 붇는다고 해서 올라가지 않는다. 경쟁만이 유치원 서비스 질을 올릴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의 정책 입안자들은 '민간시설이 항상 사욕만 챙기므로,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규제가 없는 민간시설에 투입된 정부의 지원이 서비스 개선에 쓰이지 않고, 소수의 경영자들이 다 착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국가 시설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 운영되므로, 재정만 투입하면 얼마든지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 시설만으로 절대 수요자들의 서비스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오로지 경쟁이 작동하는 민간 영역에서만이 수요자들의 변화무상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이게 지난 20세기 동안,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간 체제경쟁을 거치면서 나온 역사적 결론이다.

국공립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민간시설까지 정부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창의로운 유치원 서비스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창조는 경제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지, 규제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국가도 드물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양질의 유치원 서비스에 얼마든지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풍부한 수요가 있는 경제 환경에선, 민간 시설의 혁신과 창조가 자발적으로 나온다. 현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정부주도의 위원회도 운영하고 주요정책과제로 채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민간에서 혁신을 통한 창조에서 나오고, 이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선 수요도 뒤따라야 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역이 교육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가정이 자녀에 투자하려는 풍부한 수요를 볼 때, 유치원을 포함한 민간시설에서 상상 못할 수준의 창조가 생겨 교육현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앞세운 '공공성 강화' 정책으로는 절대 교육산업을 발전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조부모와 부모들이 받아왔던 교육현장을 답습할 뿐일 것이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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