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 모든 것이 성적으로만 평가되는 세상,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 경쟁이 작용하지 않는 곳은 없다. 학교는 성적으로, 회사는 성과로, 운동 경기에서는 등수로 우열이 나눠지고 순서가 매겨진다.

   
모두가 1등만을 위해 달려가는 세상, 자신을 잊은 채 남을 의식하면 아파하고 분해하고 자책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감히 생각할 틈도 없이. 경쟁이 나쁜 건 아니지만 모두가 1등인 세상은 없다. 자기가 1등을 할 만한 것조차 잊고 사는 세상.

어른들의 대물림된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 아이들의 행복을 앗고 있다. '찌질이'들도 살만 한 세상은 없는 것일까. 그 희망찾기에 나선 책이 나왔다. '1등 용이가 사라졌다'(글 윤숙희·그림 에스더·나무생각)는 어린아이의 자아 찾기와 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던 용이가 일주일간의 평행 우주여행에서 만난 또 다른 용이. 그곳에서는 모든 게 달라진 용이로 살다 괴로움 투성이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일주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달리 보인다. 누구나 겪고 겪어 봄직한 일들이기이에 용이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로 다가온다. 

공부도, 운동도, 노래도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하나 없는 용이.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항상 주눅 들어 지낸다. 용이는 이 모든 것이 가난한 자신의 집안 형편 때문이고 친구와 동업하다가 돈을 날린 아빠 때문이며, 자기만 보면 놀려 대는 기웅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우연히 평행 우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자기와는 무엇이든 정반대인 또 다른 용이로 살게 된다. 또 다른 용이의 집은 부자이고 부모님은 상냥하기 그지없다. 또한 용이는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1등만 하는 아이다. 친구들도 언제나 용이를 치켜세우고 선생님들도 1등을 도맡아 하는 용이에게 친절하다.

용이는 잠시 행복을 느끼며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용이의 일기장에서, 1등만 인정하는 버거운 부모님의 기대, 학원에서 학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부, 아이큐가 높지 않다는 열등감, 언제 2등으로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주일간의 평행 우주 여행을 다녀온 후 용이의 환경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용이의 마음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기웅이 무리 앞에만 가면 항상 위축되고 움츠렸던 어깨를 당당하게 펴게 되었고, 엄마의 악다구니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이 풍겨 오는 시장통의 퀴퀴한 냄새도 진한 삶의 냄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용이에게 지금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자존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다른 친구와의 비교나,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이렇듯 자존감은 자신을, 또 세상을 달라지게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희망고문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춘들에게도 적잖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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