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측 판결과 달리 13년 8개월 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서,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대법원이 '1965년 당시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측 청구권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배상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각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향후 한일관계에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피해배상을 부정한 일본판결이 우리 헌법에 어긋나고 과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는 재판부 판단에 따라,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의 임시귀국 조치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방안을 비롯해 여러 대응조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담화를 내고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어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다만 ICJ 제소의 경우 한국측 동의가 없는한 재판권이 발동되지 않아, 일본이 ICJ 제소 의향을 밝히더라도 우리 정부가 그대로 받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크다.

우리 정부는 당장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로 한일 관계에 긴장이 심화될 것과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관계장관회의를 거쳐 이번 판결에 대한 정부 입장을 말씀드릴 예정"이라며 "일측 대응과 관련해 가정적인 상황이라 생각되어 구체적인 답변은 자제한다"고 밝혔다.

노 대변인은 "다만 정부로서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성을 일본측에 전달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 대변인은 우리측 대책과 관련해 "외교채널을 통한 설명 및 제3국 인사가 포함된 중재위원회 구성 모두 검토대상"이라며 "관계장관회의를 거쳐 정부의 후속조치 계획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외교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사법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며 정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법원에는 15건의 관련 소송이 계류 중이고, 이 중 대법원에는 신일본제철 소송을 비롯해 총 3건이 계류되어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등 소송 3건의 쟁점 모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됐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날 판결로 인해 해당 소송 상고심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최종적인 권위를 지닌 결론을 내더라도 법정 관할권은 국내에 머무른다"며 "앞서 일본 최고법원이 다른 판결을 냈기 때문에 양국 이해관계에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우리측 대법원의 판단이 일본 사법부 결론과 다르다"며 "일본측이 이번 손해배상 청구 판결에 대해 ICJ에 제소하더라도 이를 받을 의무가 없는 우리정부가 받을리 없다. 결국 외교채널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 및 해상자위대 욱일기 게양에 대한 한국 해군측의 자제 요청과 관련해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계속되어 유감이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이 이날 "국제재판을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한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나선 가운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우리정부가 일본측 대응에 맞춰 어떤 대비책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피해자 4명이 일본측 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