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대한민국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음지에 있던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사례가 피해자 본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또 반향을 일으키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다만 여권(女權) 신장에 목적을 둔 페미니즘이 ‘역차별’을 발생시킨다는 일각의 주장도 제기되면서 성별 대립의 양상도 나타났다. 이에 미디어펜은 ‘아름다운 동행’ 연재를 통해 진정한 페미니즘의 발현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아름다운 동행-페미니즘③]“임신하면 사표”…경력단절 여성 둘러싼 ‘천태만상’

#사례 1. 중소기업에서 생산직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A씨(28세)는 얼마 전 회사로부터 퇴사를 종용받았다.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현장에서 일을 못 할 경우 사실상 퇴사를 해달라는 게 회사 측 논리였다. A씨는 출산휴가를 사용하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A씨는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돼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사례 2. 지금은 퇴사해 휴식기를 갖고 있는 B씨(30세)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당시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임신 순번제’까지 정해놓고, 만약 임신할 경우 일을 그만두는 것까지 각오해야 했던 열악한 병원 근무환경 때문. 지금은 결혼해 출산까지 한 B씨는 “당시 병원에서 계속 일했다면 지금의 삶이 있었겠느냐”고 토로했다.

[미디어펜=김동준 기자]고용노동부가 발간한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 여성의 고용률은 30대 초반부터 급격히 하락해 40대에 접어들어서야 간신히 회복세를 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원인이다. 

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여성 경력단절 규모 조사에 따르면 15~54세 이하의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은 2014년 22.4%에서 지난해 20%까지 2.4%p 줄었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이 주를 이루던 30~39세 사이의 비율이 감소세를 그리고 있는데, 2015년 37.5%에서 지난해 33.8%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지표와 달리 현장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온다. 특히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비롯한 영세 사업장이 여성의 경력단절에 더 취약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계약직으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출산휴가를 받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에서 퇴사한 A씨는 인터뷰에서 “대체로 계약직이 출산휴가를 받는다는 건 힘든 분위기”라며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병원을 방문할 때 주로 휴가를 내지만, 눈치가 보이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표면적으로는 임신을 이유로 재계약을 안 해주는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임신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것은 물론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경력단절을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 사회 전반에 팽배해있는 ‘유리천장’과 여성들에 대한 기회의 사다리가 동등하게 놓이는 게 선결 과제라는 논리다.

한국여성민우회 소속 권박미숙 활동가는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임신과 출산, 양육을 원인으로 꼽지만, 그보다는 채용 성차별과 유리천장 문제가 경력단절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입사가 힘든 여성들이 결국 몰리는 곳은 중소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일을 얻기가 힘들고, 설사 얻었다 하더라도 회사 내에서 인정받기 힘든 상황인데, 여성들이 좀 더 커리어를 지속할 환경이 만들어져야만 경력단절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며 “좋은 일자리에 여성들이 진입하고, 또 거기서 커리어를 지속할 환경이 만들어져야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한 여성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미디어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