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를 원치 않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선택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7월 1일 새로운 교육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교육감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쥔 좌파교육감들은 이제 일선 교육현장에서 그들의 정책들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혁신학교는 이들 교육감들이 공통적으로 공언한 핵심적인 교육정책이다. 그러나 무엇이 혁신인지, 혁신학교가 일반고와 무엇이 다른지, 왜 혁신학교를 해야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지난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혁신학교를 도입한 이래 그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개별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실험이 무엇이며 장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무리다. 막연히 ‘획일적 입시교육에서의 탈피’, '참여와 체험을 통한 학습', '지역사회와 연계한 민주시민교육 강화‘와 같은 슬로건들이 혁신학교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일 뿐이다.

   
▲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이 2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혁신학교 이대로 좋은가’ 교육쟁점 연속 토론회에서 지정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막연한 혁신학교가 대대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아직까지 혁신학교의 공과를 가름할 가시적인 데이터들도 축적되기 전에,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의 기준도 모호한 마당에 혁신학교가 확대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또 한차례 검증되지 않은 교육실험을 위해 학생들의 소중한 인생이 실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혁신학교가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학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혁신학교의 교육내용과 교육방침을 선호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 수 있고 이들의 수요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혁신학교도 증가할 수 있다.

문제는 혁신학교를 원치 않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선택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학교선택권도 보장되지 않은 마당에 혁신학교가 일방적으로 증가하게 되면 원치 않더라도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낼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더욱이 혁신학교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기존의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좌파 교육감들의 방침은 가뜩이나 좁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 ‘혁신학교 이대로 좋은가’ 교육쟁점 연속 토론회 전경 

이러한 처사는 좌파에서 기존 교육에 대해 획일적, 일률적이라 비판해왔던 것과도 모순된다. 학교의 형태를 획일화하고, 교육내용을 일률적(참여, 체험일변도의 교육프로그램도 그들이 말하는 입시위주교육처럼 획일적이긴 마찬가지다)으로 하는 것만큼 다양성을 침해하는 것은 없다. 학교단위의 자율성은 묵살하면서 혁신학교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한 독선이다.

교육에서 경쟁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취지나 교육목표를 들여다보면 경쟁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보인다. 경쟁은 비인간적이고, 나쁜 것이므로 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이는 경쟁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에서의 경쟁은 물론 이 세상에서의 경쟁은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 힘은 경쟁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진정한 혁신 인재는 이렇듯 경쟁을 올바로 이해하는데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가장 역행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학교 앞에 어떻게 혁신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가. 혁신학교가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그동안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리저리 변화하는 교육정책의 볼모이자 희생양이었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불필요한 행정을 처리하다보니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교사들의 사기는 저하되었다. 좌파 교육감들은 혁신학교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맹목적 믿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지에 따라 학교와 교육의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혁신적인 교육정책이다. 혁신학교정책에 신중한 브레이크 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