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재판부는 11월1일 열린 상고심에서 "종교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며 "이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면서 2004년 당시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14년 3개월 만에 뒤집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형사항소부에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날 병역을 거부한 오씨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것은 양심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며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종교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며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신념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은 신념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병역거부자가 내세운 병역거부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인지 여부에 대해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김소영·박상옥·이기택·조희대 대법관 등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이날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반박했고,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심사판단 기준으로 고집하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와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가 될 수 있고 이는 양심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원칙에도 위배되어 중대한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로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 모두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구제받기 어렵다.

대검찰청은 대법원의 이날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분석해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라며 현재 검찰에 고발된 병역거부자 상당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것을 시사했다.

병무청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실상 인정했던 지난 6월말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형사고발을 자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