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세습은 현대판 음서제' 대학가에 대자보 확산…'조직 안정화 위해 게시판 잠정폐쇄' 본말 뒤집혀
   
▲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월18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감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만약 비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더 객관적인 감사원에서 감사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며 "산하기관 직원 채용에 있어 공정하고 공평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서울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을 음서제라 규정한 '누가 이 나라를 망치는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대학가에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사내 익명게시판을 폐쇄해 내부 비판을 사실상 봉쇄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달 23일 서울시가 감사원에 청구한 감사에 이달 중 들어갈 예정이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사내 게시판 폐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지 반나절이 지난 6일 "오후12시26분경 다시 열었다"고 밝혔다.

앞서 기존 '친인척 고용세습' 의혹에 노조 기획입사·인사처장 아내채용·노조원 폭력행사·퇴직자 친척고용 등 더 많은 의혹이 쏟아져, 사내 게시판에도 이와 관련된 고용비리 비판글이 수백건 올라왔지만 교통공사 사측은 게시판을 닫아 직원들과의 소통 창구를 스스로 막았던 셈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4일 오후 사내 게시판인 인트라넷 익명게시판 '소통한마당'을 잠정 폐쇄하면서 "국정감사 기간 중 제기된 각종 각종 의혹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과 조직 안정화를 위하여 소통한마당을 잠정 폐쇄합니다"라고 공지했다.

다만 공사측은 사내 게시판을 다시 열기 전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의견이 무분별하게 제기되어 폐쇄를 결정했다"며 "직원들이 국회나 언론으로 제보하는 것은 게시판이 아니라도 직접 할 수 있다. 게시판 복구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윤재옥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6일 "서울교통공사가 사내 직원 익명게시판을 폐쇄했다"며 "고용세습 진원지인 교통공사가 진상을 제대로 밝혀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게시판을 폐쇄하는 행태에서 비추어 볼 때 국정조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고 비판했다.

사측의 이번 조치로 현재 직원들에게는 서울교통공사노조 홈페이지의 자유 게시판이 '닫힌적 없는' 소통창구로 남게 됐다.

노조 홈페이지 익명게시판에는 '부끄러운줄 알아라' 필명의 '이제는 대학교에서도 비리회사라고 대자보 붙인다' 글을 비롯해 승무본부장 명의의 10월30일자 성명서 '조합원의 입을 틀어막는 공사의 반민주적 행위를 규탄한다', '적폐청산 발목잡는 서울적폐공사' 및 '시청 앞에서 1인시위 릴레이하는가 보네요' 등의 글이 올라와 사내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불거져 11월21일부터 12월20일까지 한달간 사내 익명게시판을 폐쇄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으로 불거진 공공기관 채용비리 실태에 대해 정부는 근절추진단을 구성해 6일부터 내년 1월말까지 강도 높은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338개 공공기관을 비롯해 서울교통공사와 같은 847개 지방공공기관, 268개 공직유관단체 등 총 1453개 기관에 대해 추진단은 최근 5년간 인사 및 채용 전반에 걸쳐 부정청탁 행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각 공공기관에서 인사청탁, 시험점수나 면접결과 조작, 승진 채용 관련 부당지시와 향응 금품수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 특혜 등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면밀한 사찰에 들어가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가 사내 게시판 폐쇄에 나섰던 것은 본말이 뒤바뀐 처사다.

'조직 안정화를 위해 소통한마당을 잠정 폐쇄하겠다'는 사측의 명분은 청년 취업준비생 일자리의 불공정한 현실에 개탄하는 민심을 거꾸로 읽은 변명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