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사회부 김동준 기자
[미디어펜=김동준 기자]1936년 나치 독일이 라인란트에 군을 파견한 것은 명백한 베르사유 조약 위반이었지만, 정작 목소리를 내야 했던 영국은 외교적 항의에 그친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기세가 등등해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계 거주지인 주데텐란트까지 합병했고, 끝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침묵의 대가로 피를 지불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인적쇄신의 한 축을 담당하던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이 해촉됐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인 게 현재까지 드러난 표면적인 이유다. 전 전 위원은 해촉 직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내년 2월 말에 전당대회를 하려면 12월 15일까지 현역 의원을 잘라야 하는데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며 “결국 한국당이 인적쇄신을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 이후 한국당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통렬한 참회의 뜻을 새기자는 의미에서 노타이에 흰색 와이셔츠로 복장까지 통일한 한국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3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마라톤 의원총회에서는 ‘당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한국당, 나아가 보수의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같은 결심도 해를 넘기지는 못했다. ‘십고초려’ 끝에 비대위가 위촉한 전 전 위원의 해촉은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인적쇄신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비대위가 총선을 멀리 두고 출범한 바,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하지만, 비대위 인적쇄신은 명분도 동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전 전 위원은 조강특위 출범 직후부터 파격적인 ‘물갈이’ 기준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과 달리 7월 전당대회를 주장한 것도 당의 ‘면모일신’을 이루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물갈이 대상이 될 현역 의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전원책이라는 사람이 현실정치를 모르는 것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시 나치 독일이 유럽을 전쟁의 화마로 이끌기 이전인 1938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요구대로 주데텐란트를 나치 독일에 넘기는 뮌헨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역사는 이를 비겁한 ‘유화정책’(appeasement)으로 기억한다. 

특정 계파의 알력으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필요한 한국당을 두고, 과거 체임벌린이 저지른 실수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침묵의 대가는 피’였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때가 아닌가 싶다.

   
▲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위 위원 등 조강특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자유한국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