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노후건축물에도 화재 안전기준 적용해야…'간이 스크링클러 미설치' 고시원, 서울에만 1080곳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새벽에 불이 났지만 스프링클러 미설치로 확산을 막지 못해 거주자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08년 당시 13명이 사망했던 고시원 방화사고 2건을 계기로 스프링클러 등 소방안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이번 종로 고시원의 경우 옛 건물로 소급적용되지 않아 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고 결국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힘들었다는 지적이다.

2009년 7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 후 고시원 복도 폭 1.5m 이상 및 스프링클러 등 안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2007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번 종로 고시원의 경우 아무런 하자가 없었던 소방안전 사각지대였다.

앞서 1992년 7월 소방법 개정으로 연면적 600㎡ 이상 복합건축물에서는 소방훈련·교육·화기취급 감독·소방시설 유지관리를 맡고 화재 발생시 피난계획을 짜는 소방안전관리자의 선임이 필수였지만, 1983년 사용승인을 받은 종로 고시원 건물(연면적 614㎡)은 해당되지 않아 안전관리자 또한 선임하지 않았다.

더욱이 종로 고시원은 지난 2012년 서울시가 진행했던 '노후 고시원 안전시설 설치 지원사업' 대상으로까지 선정됐지만, 건물주 동의가 없어 실제 설치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7월 이전에 지어져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 고시원은 서울에만 1300여곳에 이른다.

서울시가 이들에 대해 (일반 스프링클러 설치에 비해 공기가 짧고 공정이 단순한) 간이 스프링클러를 지원해 221곳에 설치됐으나, 나머지 1080여곳은 물리적으로 화재를 막기 힘든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시는 이번 '종로 고시원' 화재 사고를 계기로 관내 고시원 5840곳을 비롯해 노후주택 및 소규모건축물(연면적 2000㎡ 미만) 1675곳에 대해 일제 점검에 들어갔다.

서울시 점검반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유무를 비롯해 비상구 및 피난경로 장애물 적치, 피난 안내도 부착, 건축물 주요 구조부의 균열 변형에 초점을 맞춰 구조적 안전성을 점검하고, 점검 결과 위험 요인이 확인되면 보강 요구 등 행정 조처를 할 방침이다.

건물 소방시설 점검 책임자인 한 소방시설관리사는 "관계인(건물주)이 할 수 있는 작동기능점검의 경우 소방시설이 잘못되어 있어도 이상 없다고 보고하면 따로 소방서 특별조사나 민관 합동점검을 나오지 않는 이상 10년이고 20년이고 모를 수 있다"며 "건물주들이 경비를 절약하려고 구조 안전성을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이번 화재가 일어난 고시원 건물의 건물주에 대해 건축법, 소방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책임이 있다면 소환 조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옛 건물일수록 소급적용 시한 등으로 법망을 비껴가기 손쉽다"며 "고시원은 대개 방들이 빼곡히 붙어있고 좁은 탈출구, 스프링클러 미비 등 화재에 취약한 요소를 갖춰 정부 규제나 지원에서 벗어나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번 화재 사고 후 종로구청 추천을 받아 피해 생존자들이 이주한 일부 고시원도 스프링클러 미비 등 안전시설 문제가 여전하다고 들었다"며 "옛건물에서 운영되는 대부분의 고시원들이 유사한 사례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고시원 화재에 대해 "건물주가 건축법, 소방법 등을 위반했는지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책임이 있다면 부르겠다"고 말했다.

기존 노후 건축물에 새로운 화재 안전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비용의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안전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실정을 고스란히 보여준 이번 고시원 화재 사고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 사진은 1월26일 불이 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소방대원이 화재원인을 조사하는 모습('종로 고시원' 화재사건과 무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