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대법의 징용 배상 판결 한일관계 최대 악재
한미일 동맹까지 휘청…핵 위기 앞에 왜 자해하나
   
▲ 조우석 언론인
"방탄소년단이 혐한(嫌韓)보다 강했다". 11월 14일자 조선일보는 13일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일본 콘서트가 열린 도쿄돔이 5만 명 팬들로 가득 찬 사진을 1면 사진으로 내보내면서 그런 제목을 달았다. 가진 것도 없이 우쭐해 하는 한국인의 민족 감정에 비위를 맞춘 편집이다.

이 나라 1등 신문이 이렇다. 보름 전 대법원이 강제징용 개인 배상 판결을 내린 최대 악재에도 한류는 큰 영향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독자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 나라 사법부의 균형감각과 권위를 상징하는 대법원이 한일관계를 포함한 국제외교를 보는 전략적 안목이 그토록 없으니 최악의 판결을 덜컥 내리고, 언론은 거기에 부화뇌동하기에 여념 없고….

언론뿐인가? 지식인 전체가 침묵하고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엄연히 사법부 발(發) 국가위기다. 이게 한일관계를 파탄내고 이 나라에 불행을 안겨줄 것도 자명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그들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게 무려 13년8개월 만의 승소 판결인데, 대법원장 김명수의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게 왜 국제법을 흔들고, 한일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판결인가? 지금의 한일관계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결단했던 한일국교정상화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걸 정면에서 뒤집은 탓이다. 여기에서 물어보자. 대체 그게 언제 얘기인가?

당시 한국정부가 받았던 5억 달러로 우린 포항제철을 지었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징용 피해자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며 다시 들고 나오다니. 그걸 마무리한 게 언제인데 이 문제를 꺼내 전략적 이웃 일본을 괴롭히는 우리는 과연 현명한가? 그리고 국제사회의 좋은 이웃일까?

백 번 양보해 그게 옳다고 쳐도 타이밍이 최악이다. 북핵 문제라는 최악의 외교안보 위기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을 떠받치는 한일 협조가 절실한 형편에서 우린 왜 자해(自害)의 바보짓에 코 박는 걸가? 이 따위 판결에 누가 좋아할까? 우리민족끼리의 반외세 논리를 펴는 남과 북의 좌빨이 좋아 날뛰지 않을까? 한국인 참 못났는데, 정말 못난 게 대법원이다.

이러니 '법률 꽁생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들이 세상 돌아가는 걸 폭 넓게 볼 수 없다는 인식이다. 대법관들도 이 재판의 국제외교적 파장을 잘 몰랐을 것으로 나는 의심한다. 아니면 섣부른 민족감정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판결일뿐이다. 혹시 이걸로 역사 정의를 구현했다고 자부를 할까?

   
▲ 지난달 한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기 앞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이날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헛웃음이 나올 판인데, 이번 판결은 노무현 정부 입장마저도 뒤집었다. 그래도 노 정부 입장은 개인 배상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당시 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검토했으나 1965년 당시 합의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문재인 현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 자격으로 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그걸 모두 뒤집은 게 이번 판결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도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배상책임을 부인해 온 일본 측은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강경 대응할 전망이다. 당연히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경제에도 먹구름을 끼게 할 것이다. 일본 재계의 경고대로 누가 한국에 투자하려 할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2011년 헌법재판소의 한일관계 관련 위헌 소송 결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걸 나는 오늘 지적하려 한다. 당시 헌재는 "한국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違憲)"이라며 정대협이 제기했던 헌법소원을 덜컥 받아들였다.

헌재의 결정은 결국 광범위한 반일 정서에 사법부가 굴복한 꼴이었다. 이후 등 떠밀린 국내정치권의 무책임한 반일(反日)의 질주가 시작된 게 우연이 아니다. 즉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해 말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강력 요청했다.

이게 풀리지 않자 이듬해 헬리콥터를 타고 독도로 날아가는 퍼포먼스로 한일 관계를 파탄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헌재가 문제였다는 소리다. 그 끝에 이번 김명수 대법원의 최악의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다. 2011년 헌재의 잘못된 결정, 그리고 이번 김명수의 대법원은 결국은 하나다. 이번 대법원과, 7년 전 헌재는 공통점이 있다.

한일관계를 포함한 국제외교를 보는 안목이 없다. 그러니까 사법부 발 국가위기를 자초한 케이스가 맞다. 사법부 발 국가위기는 이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다. 건국 이래 최악의 재판 중의 하나로 나는 광주5.18에 관한 기존 판결(1980년)을 뒤집었던 1997년도 대법원 판결을 지목한다.

당시 대법원은 5.18은 김대중에 의한 내란행위였다고 못 박았던 17년 판결을 뒤집었다. 즉 5.18 시위세력을 "헌법을 지키려 한 사실상의 준(準)헌법기관"으로까지 격상시켰다. 180도 바뀐 것이다. 그런 논리 속에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당시 국가를 범죄자로 몰고 갔다. 그 논리의 연장선에서 전두환과 신군부의 국가폭력은 악마라는 운동권적 인식이 대세로 등장했다.

물론 그건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치 논리에 재판부가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대법 판결은 우리민족끼리의 반외세 정서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렇게 대법원과 헌재가 경쟁적으로 최악의 판결을 내려 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위안부 문제 시비로 한일관계에 지속적으로 엇박자를 놓고 있고, 대법원장은 한 술 더 떠서 징용자 문제로 일본과 으르렁댄다. 그런데도 언론-지식사회 모두가 입 닫고 조용히 산다. 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오늘 그걸 다시 묻는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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