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등 박정희부정세력, 허수아비박정희 비판과 칭찬 그쳐

좌승희박사의 박정희대통령과 한국의 경제발전 심층분석(1)- 박정희 부정과 청산이 지식인의 사명인가

대한민국 산업화와 제조업강국 신화를 창출한 박정희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어떤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60년대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는가? 박정희의 성공원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제개발과 성공에 중요한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 빈곤과 가난에 허덕이는 개도국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책적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박정희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박정희의 통치철학과 경제발전 성공원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초빙교수
역사 속에 잊혀진 박정희 성공원리
박정희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4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대부분의 국내 정치학계는 물론 경제학계마저도 박정희시대의 성공을 부정, 혹은 폄하하는 것이 대세였고, 정치권에서도 진지하고 객관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먼 찬반의 첨예한 정치적, 이념적 평가만 난무하고 있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동안 박정희시대의 성공을 부정 혹은 폄하하는 것이 마치 소위 민주지식인의 사명인 것처럼 치부되어왔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박정희시대의 성공과 그 성공원리는 있든 없던 교훈으로 배워야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극복,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역으로 국제적으로는 그동안 많은 나라들이 한국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배운다고 애를 쓰고 국내외 관련 연구기관들이나 일부학자들은 박정희 성공정책들을 후진국들에 전수한다고 요란을 떨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박정희 성공전략의 진수가 무엇이냐, 혹은 박정희주의가 있기나 한 것이냐 물으면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학계의 현실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묻는다면, 국내 각종의 해외개발 지원기관이나 관련 연구기관들이 그렇게 많은 예산과 인력을 쓰면서 해외 지원사업을 해왔는데도 꼭집어 우리의 경험전수가 경제적 도약에 가시적인 기여가 되었다고 내세울 만한 나라나, 아니면 개별 사업의 경우라도 성공사례들이 그 동안 얼마나 있었는지 묻는다면 시원한 긍정적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예컨대 그동안 수도 없이 새마을 운동을 해외에 전수한다 애를 써왔지만 한곳이라도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제대로 정착되어 국가발전에 가시적 기여를 하고 있는 나라가 한 나라라도 있는가? 단순히 박정희의 정책이나 사업의 전수가 아니라 이들 성공정책이나 사업의 바탕에 흐르는 성공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건임에도 이 원리를 구명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성과가 부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의 눈에는 박정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인정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박정희성공원리”의 객관적 실체에 대한 진지한 구명(究明)노력보다는 각자의 도그마화된 이념이나 혹은 특수한 이론적 시각에서 자기들 구미에 맞게 “허수아비 박정희”를 그려놓고 비판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는 반(反)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자기만족적 해석에 안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부정의 근거와 논리, 그리고 허점들/ 박정희시대 성공의 특징: 불편한 진실
박정희 시대는 무엇을 만들어냈는가? 여기서 박정희시대가 만들어낸 경제적 결과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높은 성장률이나 분배와 같은 거시적 성과지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책과 그 정책들이 만들어낸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거시적 성과 면에서 박정희 시대는 성장과 분배 모든 면에서 세계은행이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로는 세계최고의 양호한 성적을 냈음에도 이를 평가하기 보다는 구조적 문제라든가 경제외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폄하하는 것이 대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개발연대 시절 세계최고수준의 성장과 분배실적을 기록한 박정희 경제정첵과 성공원리가 주류경제학과 자유주의학자, 좌파 등에서 부정당하거나 폄하되고 있다. 박정희성공모델에 대한 부정이나 칭찬은 실체적인 접근에서 비롯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주류학계나 좌파학자들이나 '허수아비 박정희'를 그려놓고 각자의 도그마에 따라 박정희를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외국계 SC은행 회장과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시대에 대한 찬반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불편한 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시대 한국의 경제발전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주류경제학에서 폐기처분한 정부주도 산업정책을 통해 성장했다. 둘째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제약한 비민주적 정부에 의해서 성장했다. 셋째로 친 재벌정책으로 경제력 집중과 기업부문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넷째로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을 초래했다.
 

박정희 경제적 성공은 거시지표에 의해 쉽게 확인되지만 문제는 위와 같은 일부 특정 정책이나 성공에 수반하는 구조적 특징이 바로 찬반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네 가지의 특징이 박정희 부정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박정희 부정의 논리
박정희 부정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계에서부터, 정치경제학계 나아가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사회과학 분야와 사회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위의 4가지 특징을 통해 그 실상을 규명해 볼 수 있다. 


 “시장을 신”으로 보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계와 자유주의 경제학계의 반박정희 논리
우선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계는 첫째특징에 가장 불편해 한다. 주류경제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주도 산업정책은 성공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폐기되어야할 정책이라고 가르쳐왔다. 박정희는 수출진흥정책이나 중화학 공업육성정책 등에서 바로 경제학이 하지 말라는 정책을 한 셈이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계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아가 주류경제학과 연계된 시장중심의 자유주의 경제학계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산업정책이 바로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유의 제약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주류 및 자유주의 경제학계에게는 두 번째 특징에 대해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더 곤혹스럽다. 박정희시대를 경제적 자유가 신장된 시대라 부를 수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도 경제가 발전한다니, 자유주의 경제학계가 수용하기는 어려운 명제이다. 물론 이들의 경우 지금의 중국의 발전에 대해서도 썩 그럴 듯한 설명을 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또한 세 번째 불균형도 수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재벌을 육성해서 독점기업은 물론 한국경제의 온갖 정치경제적 문제의 원천을 만들어 내었으니, 독점자는 없어야 하고 모두가 규모가 같고 평등하고 균형된 완전경쟁시장을 최상의 시장이라 보는 주류 및 자유주의 경제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결과 또한 수용하기는 어렵게 된다. 더구나 반중소기업정책으로 중소기업성장기반을 약화시켰으니 더더욱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네 번째 지역불균형문제는 이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주류경제학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경제학에 치우쳤던 과거 경제발전론이 균형성장을 강하게 지지해온 전통 때문에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이렇게 보면 주류 경제학계와 자유주의 경제학계는 그들이 신봉하는 경제학 논리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박정희 성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예외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세계 주류경제학계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우리 이론과 신념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민주주의를 신”이라 보는 정치학계, 정치계의 반박정희 논리
한편 민주주의를 신격화하는 정치학계나 정치계는 군사 쿠데타, 유신 등 민주질서에 반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에 어떠한 경제적 성공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어떤 정치도 그 성과에 관계없이 배격되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있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과를 인정해야한다는 현실 타협적 입장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정치가 어떠한 경제적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박정희 시대를 올바로 평가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셋째, 넷째 불균형에 대해서도 평등의 민주정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결국 민주주의를 신격화하는 정치학계나 정치계의 경우는 박정희가 민주주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 모두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박정희 성공을 인정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좌파들의 반박정희 논리
경제적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좌파경제학자들에게 박정희는 양날의 칼이다. 중소기업에 불리한 대기업, 재벌경제를 만들어내어 기업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등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한 박정희 패러다임은 인민의 적인 셈이다. 그러나 큰 정부가 부의 재분배와 규제정책을 통해 보다 평등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좌파입장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역할을 중시한 박정희패러다임을 온통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부 좌파경제학자들은 박정희산업정책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실패한다는 산업정책이 왜 성공했는지 설명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시장이 하느님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계에 대한 반론으로 정부가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데 그치고 있다. 가끔 박정희 산업정책의 성공을 인정하는 장하준 영국 켐브리지대 교수가 이에 해당한다.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이 글은 <회보 박정희> 제40호의  "박정희 대통령의 성공원리는 '정치의 경제화'"라는 기고문을 수정, 증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