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WTO에 국내 조선산업 지원 제소
한·일 상의 회장단 회의, 내년으로 연기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대법원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국내 조선산업 지원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이어지면서 내달 30일 정식 출범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앞서 지난달 30일 강제징용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4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전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이들에게 각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측은 이에 대해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 당시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왜 합의를 뒤집느냐'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상공회의소·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경제동우회·일본경영자단체연맹 등 경제 4단체 역시 양국관계 손상을 우려하는 의견을 공동 발표하기도 했다.

   
▲ 법원기/사진=연합뉴스


업계는 이처럼 양국 관계가 틀어질 경우 우리 정부의 CPTPP 가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당초 TPP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하면서 일본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 가량을 차지하고 일본과 멕시코 등 우리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경제공동체 출범이 41일 남았지만 가입 의사도 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도국과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대법원 판결 일주일 만에 주제네바대한민국대표부를 통해 한국의 조선산업 지원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절차상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우리 정부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해 조선산업을 지원한 것이 저가수주를 야기, 일본 조선업체들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지원 △성동·STX조선해양 구조조정 △한국선박해양-현대상선 선박건조 금융계약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의한 선박 신조 지원 등을 문제로 꼽았다.

   
▲ 15일 서울 다동 대우조선해양 사옥에서 열린 CEO 기자간담회에서 정성립 사장(가운데)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현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해당기관들이 상업적 판단에 따라 금융지원에 들어간 것으로, 국제규범에 합치한다고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역시 15일 최고경영자(CEO) 기자간담회에서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판단해 지원했으며, 결과적으로 청산 대비 100배 나은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주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위원회를 두 차례나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자수주'는 있을 수 없다"며 "일본 조선소와 우리는 건조하는 선종이 다르다는 점에서 경쟁관계도 아닌데 강제징용을 비롯한 정치이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꼬집었다.

일본상공회의소가 한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문제 삼기로 하면서 지난 12~13일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대한상의는 일본상의 측의 이러한 의사 표명에 대해 '경제계 행사에서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며 회의 진행을 만류했으며, 양측이 회의 연기에 합의하고 내년 재개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일상의 회장단 회의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상의 회장들이 모여 민간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대표 회의체로, 매년 교대로 개최된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미중 무역분쟁·글로벌 금융위기 고조·신흥국 경기침체 등 각종 리스크가 만연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부담이 더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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