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21년…여전한 구조조정 난항
외부 리스크 높아지는 것도 당시와 비슷
   
[미디어펜=나광호 기자]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지 21년이 지났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뉴스는 6·25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로 바뀌었고 원/달러 환율은 780원에서 한때 2000원을 넘겼다.

또한 현대·기아·대우·쌍방울·삼미·해태·한라·한보·쌍용·뉴코아 등 굴지의 그룹들의 해체 및 분할과 은행 합병으로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저출산 기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당시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를 넘어 브라질·러시아·터키 등의 국가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있었으나,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는 펀더멘탈이 튼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실천하지 못했고, 끝내 파국을 맞게 된다. 외부적으로 △저환율로 인한 낮은 가격경쟁력 △종금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동남아 투자 실패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과의 관계 악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구조조정 지연이라는 암초가 이같은 상황을 이겨낼 능력을 깎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 행정부 인사들이 DJ를 비롯한 야당이 정리해고를 비롯한 노동시장 유연화에 반대했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특히 기아차의 경우 혈세를 붓고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IMF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터키 역시 꾸준히 구제금융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남아공·인도·브라질 등을 중심으로 '신흥국 6월 위기설'이 유행하기도 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경제도 침강 국면을 그리고 있다.

   
▲ 16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 등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자동차 생산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조선도 세계시장점유율 44%에 달하는 등의 성과가 나고 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구조조정 만류를 당부한 셈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4분의 1토막 났으며, 조선 역시 업황 대비 생산설비와 인력이 과잉이라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발언의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노사협력(124위)·정리해고비용(114위)·노동자 권리(108위)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노동시장 부문 41위에 머물렀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이날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놓은 것도 우려를 낳고 있다. 회사의 영업손실이 천억 단위에 달해도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파업을 강행하는 국내 강성노조의 행태로 볼때 이들의 합류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돌고 있다.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쇠고기O157'을 비롯한 문제로 미국과 무역분쟁을 겪고, 일본에 대해서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관계가 악화되면서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는 스와핑(중앙은행간 통화 교환)에도 고배를 마셨지만,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친중 논란' 등의 영향으로 우방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또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든 것이 기업부담을 가중시켜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국 정부에게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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