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청와대와 여당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단결권, 강제노동 폐기 등 4가지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 처리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고자와 실업자까지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ILO핵심협약 비준은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서둘러 발표한 것이기도 하다.

ILO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해고자도 노조 간부로 활동하면서 임금 협상에 관여할 수 있게 돼 파업의 일상화가 우려된다. 게다가 5급 이상 공무원도 노조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이미 안정적인 연금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공무원조직에 과도한 혜택을 주게 된다. 해직교사가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합법화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라는 입장이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노동계를 ‘더 큰 선물’로 달래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경영계가 요구해온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노동계의 숙원사업인 ILO협약 비준을 ‘주고받기’ 식으로 맞교환하겠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이 요구해온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등은 여전히 논의에서 외면받고 있는 상황에서 ILO핵심협약 비준이 현실화될 때 앞으로 경영계가 받을 타격은 탄력근로제로 노동계가 입을 손해보다 훨씬 클 것이 자명하다.

선진국 가운데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때 대체근로자 투입이 금지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또 외국에서는 엄격히 통제되는 사업장 점거파업도 우리는 일상이다. 

최소한의 균형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무색하게 ILO핵심혁약이 비준된다면 결국 노동계가 직접해온 주장처럼 ‘노조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뿐이다. 노사간 균형 있는 협상은 뒷전이고 자신의 배불리기에만 앞장서는 ‘주류 노조’를 도울 뿐이라는 지적이다. 

마침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22일 발표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S사 노조의 사례처럼 주류 노조원들이 자신들의 친인척을 고용세습하기 위해 비주류 노조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까지 작성하는 불법 '고용세습'이 사회문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정부가 ILO핵심협약 비준 카드를 꺼낸 것은 이미 약속한 탄력근로제 확대를 관철시키면서도 궁극적으로 노동계의 숙원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관철시키는 동시에 빠져나가기만 하는 지지율 회복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정부측 인사로 구성된 경사노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도 벌써부터 나와 있다. 재계에서는 경사노위에 여성, 청년,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이 위원으로 다수 참여하면서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을 관철시키기 쉽지 않을 것으로 탄력근로제 확대 역시 경사노위 협의 과정에서 번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ILO 분담금의 절반을 내는 미국조차도 핵심 협약 8개 가운데 2개만 비준하고 있고, 일본도 8개 가운데 국내법과 충돌하지 않는 6개만 비준하는 등 자국의 현실에 맞게 골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노동계를 향해 “더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직격하는 등 한때 민주노총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이던 정부가 수일도 지나지 않아 민주노총 달래기에 매달리기로 후퇴한 것을 보면서 앞으로 노조의 정치투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30~40대 취업자의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기득권 노조' 편들기에만 급급한 정부에게 무엇이 가장 절실한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