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책 구덩이 9기 조성 뒤 매립…물 없는 도랑 해자도 확인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강화 고려궁지 북동쪽 약 2㎞ 떨어진 옥림리 주택부지에서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방어시설 중 하나인 치(雉)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은 국비지원 발굴조사 지역인 강화 옥창돈대 인근 옥림리 부지에서 강화 중성(中城)에 맞닿은 목책 치와 성벽 바깥쪽에 판 물 없는 도랑인 외황(外隍) 유적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황(隍)이란 해자 중에서도 물을 채우지 않은 방어시설이며, 성벽 안쪽이나 밖이냐에 따라 내황(內隍)과 외황으로 나뉜다. 

고려는 몽골 침입을 피해 1232년 강화로 천도한 뒤 1270년까지 머물렀으며, 방어를 위해 궁궐 바깥에 내성(內城), 중성, 외성(外城)을 쌓았다.

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인 중성은 흙을 다져 올린 8.1㎞ 길이 토성으로, 중성에서 치와 외황 유적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치는 성벽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킨 구조물로, 목책 구덩이 9기와 두 겹 외황, 초소가 나타났다.

목책 구덩이는 능선을 따라 한 줄을 이뤘는데, 축조 이후 나무 기둥을 뽑아내기 위해 구덩이를 파낸 뒤 흙으로 메운 것으로 조사됐다.

'고려사절요' 고종 46년(1259) 6월 기록에 따르면 몽골은 고려와 종전을 위한 강화협정을 맺으면서 강화도성을 허물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몽골 관리가 성벽을 파괴하는 과정을 직접 감시했다.

외항은 풍화암반층을 L자형으로 판 뒤 바깥쪽을 돌과 흙을 다져 올린 유적과 U자형으로 파내고 흙을 바깥에 쌓아 올린 유적 두 개가 각각 확인됐다.

특히 신라 토기를 버린 폐기장도 확인돼 신라시대부터 군사 목적의 방어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원은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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