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8곳만 허용…'수익금 원내 재투자' 의무로 의료기술 사업화 불가
   
▲ 원희룡 제주지사는 5일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했다"고 밝혔다./제주특별자치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5일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조건부로 개설 허가하면서 법 제정 16년만에 우리나라에 첫 영리병원이 열리게 됐으나 풀어야 할 의료 규제가 산적해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지난 2002년 12월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지 16년 만에 최초의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당초 2015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고도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 반대에 개원 허가가 6차례 연기됐고, 결국 외국인 진료에 한해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으로 한정됐다.

앞서 제주도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로 불허 권고를 내렸으나,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고 내국인 진료를 금지해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적용되지 않는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게 됐다.

일각에서 의료 공공성 약화를 우려하고 나섰지만 건강보험 등 공공의료체계와 무관한 영리병원, 그것도 외국인 고객만을 타깃으로 삼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이제라도 시작하게 되어 향후 의료관광 시장의 첨병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영리병원은 제주도와 인천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 8곳에만 허용된 의료기관이지만, 이번 녹지국제병원을 시작으로 의료기술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에 새로운 기회가 마련됐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의료 규제 중 대표적인 것은 의료진과 환자 간의 원격 의료를 금지한 것이다.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거동 불편 환자의 재가 진료와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 서비스 도입이 가능해진다.

또한 전국 거의 모든 의료기관은 비영리병원으로 수익금이 나더라도 이를 설립 목적에 맞게 병원 내에 재투자만 할 수 있어 의료기술의 사업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첨단 의료기술 및 신약개발을 위해 고가의 첨단 의료장비는 물론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연구개발(R&D)에 대규모·장기투자가 필요한데도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려운 대부분의 비영리병원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녹지국제병원처럼 영리병원이더라도 진료비만 병원 자율로 정하고, 인력과 시설 장비는 국내 의료법에 맞게 갖춰야 한다.

대학병원 등 학교법인과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이 가능하지만 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등 매우 까다로워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개인이 병원을 통하지 않고 유전자 분석기관에 의뢰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TC) 또한 매우 제한적이고, 자가 줄기세포 이식도 하지 못해 일본 등 이웃국가에 비해 줄기세포 치료가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신약 개발처럼 수백억 원을 투입해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를 입증해야 가능한데, 이 때문에 관련 기술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가는 실정이다.

원희룡 지사는 향후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 허가' 취지 및 목적을 위반할 경우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 차원에서 다른 산업처럼 회사 형태로 자본을 조달해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으로 설립된 녹지국제병원이 의료 수준을 더 높이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