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동족간 전쟁위협 제거 시급, 통일한국 전진해야

전우현의 민족과 자유의 새지평(6)-한민족 민족주의는 8천만의 오아시스

민족주의는 우리 근현대사를 이끌어온 핵심 키워드이다. 일제의 36년간 식민지지배와 해방, 그리고 6.25북한의 남침, 남북분단 상황 등...민족주의와 민족이란 개념은 항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념갈등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게 만드는 핵심용어이다.  자유와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혁명이후 본격 발현된 자유주의는 서구의 근현대사를 추동한 핵심 키워드였다. 자유는 천부인권, 사유재산보호와 함께 서구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반면 공산주의는 급진적 민족주의, 전체주의, 사유재산권 부정 등으로 인류사에서 끔찍한 재앙을 초래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나라도 세우고, 경제건설도 하고, 민주화도 해냈다. 외국 어디에서도 대한민국을 기적을 창출한 나라라고 말한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런데 기적에는 어두운 골짜기,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예컨대, 계층간의 갈등, 지역감정의 골, 세대간의 차이가 생겼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라는 의식으로 뭉쳐야 한다. 혈연, 지연, 학연 등도 ‘우리’라고 뭉친다. 명절 때, 야구시합 때는 특히 이 혈연, 지연, 학연의 ‘우리’의식이 거세다.

그런데 내 가족이 잘되자고 우리 아이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하거나 우리 경상도, 전라도가 잘 되자고 다른 지역 사람을 무시하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 아이가 과외 잘받고 유학 다녀와 잘 되는 것 같아도 나라가 망하면 소용이 없다. 우리 지역이 잘 발전하는 것 같아도 나라가 IMF 구제금융 사태처럼 파산하면 끝장 아닌가?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보다 큰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야 한다. 한민족이라는 동질의식으로 뭉친 공동제단(共同祭壇)이야말로 계층갈등, 지역주의,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성소(聖所)요 해독제일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나 개인주의가 범하기 쉬운 냉혹한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가 귀함을 알려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와 가정, 내 지역이 있으려면 나라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굳건해야만 한다. 개인주의라고 하여 오로지 나, 우리 가정만 지키려 하고 공동체를 돌보지 않으면 나와 내 가정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과 같이 반도에 갇혀 사는 특수한 운명에서 힘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서는 민족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 민족의식은 이 한반도에 귀속되어 사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인종적인 구별이 아니다. 지역적 잣대로 한민족(韓民族)을 말한다. 이 한반도에 살거나 비록 외국에 살더라도 한반도를 마음의 고향으로 하는 모든 사람을 이른다. 그러니 다문화가정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여 외국인을 한국으로 오게 했으니 우리가 한민족 안의 구성원으로 푸근히 감싸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들의 도덕적 결단 없이는 안된다. 작은 ‘우리’에게만 매달려 이기적인 행동만 하다가는 큰 집이 무너짐을 알아야 한다. 보다 큰 공동체에 대한 각성과 결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민족의 단결과 통일이 절실함을 모두 느껴야 한다. 엄중한 민족의 현실을 알아야만 높고 깊은 사랑이 가능하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앎에서 흘러나오는 높고 깊은 사랑이다. 한민족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높은 차원의 ‘고급공동체’를 이룰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무늬만 ‘우 ∼ 리 민족끼리’ 따위의 계급간 시기(猜忌), 미움 선동이 아니다.

대립과 투쟁을 넘어서 화합과 통일로 나아갈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되고 성숙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이상(理想)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목마름은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의 전쟁 가능성과 대한민국 내의 정치분열이라는 중대한 고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고통이 절실하기에 믿음직한 오아시스, 튼튼한 민족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민족주의는 역사와 문화, 지역적 기반, 언어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로 묶는다. 신문명에 일찍 눈뜬 서양에서는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였지만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저항적인 성격을 띠었다. 민족주의는 상반된 모습을 야누스처럼 다 갖고 있다. 그 본질은 민족에 대한 애정이다. 우리는 선(善)한 마음을 여러 모습으로 펼칠 수 있다. 한민족은 이웃과 이웃이 속해있는 민족공동체를 향하는 선(善)한 마음으로 민족의 단결,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말 독일 드레스덴공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반도 통일방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동족간 전쟁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의식으로 통일(統一)시대를 열어야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보다 더 위대한 통일한국(統一韓國)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한국은 우리 모두를 가난, 지역감정, 이념분쟁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민족분열, 국민간 이해상충을 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크지 않은 틀 안에서도 여러 의견을 두고 다툰다. 민족분단(民族分斷)도 여기에서 왔다. 안보행사, 보훈강연만으로 이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분열을 치유하려면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한 일차적, 비공식적 관계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형태의 모임이 만들어낸 두터운 벽 때문에 사회생활 네트워크도 분열되어 있다. 물론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한 인연도 소중하다. 그러나, 여기에만 의존하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한민족 모임체를 모두 치면 현재 8000만 명 정도이다.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초강대국과 비교하면 비할 수 없이 적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결코 개인의 이기주의, 지역감정,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계급적 대립에 의해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 사랑공동체다. 우리는 한민족의 모임체가 항상 아름답기만 하여서 사랑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5000년 역사에서 항상 빛나고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았다. 외부의 침략을 당하여 치욕으로 점철된 때도 많았다. 포악한 왕의 학정으로 온 백성이 도탄에 빠져 신음한 때도 있었다. 사화, 당쟁으로 파벌싸움이 극심하여 서로 중상모략하여 오히려 외적(外敵)보다 더 적대(敵對)한 치졸한 역사도 있다. 그러나, 나를 낳아준 부모가 아름답지 않아도, 남보다 못났더라도 감사히 여기고 공경해야 하듯 유구한 한민족 모임체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한민족은 5000년 역사 동안 거의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왔다.  한 때 경제가 혁신적으로 발전한 시기가 있었다. 이 덕택에 허기를 면했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님을 이후 절감하였다. 자율적인 의식혁명 운동이 부재하였던 댓가를 30년 동안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 등 지성계와 문화계는 좌파의 천국으로 변했다. 북한의 위협에는 거의 묵시적인 동조를 하고 대한민국의 처사에는 조금의 빈 틈만 있어도 비난의 화살을 꽂는다. 자발적인 의식의 진화없이 잘살기 운동(경제운동)만으로는 급진 좌파, 대한민국 부정(否定)사상을 견제할 수 없었다. 의식의 진화는 사랑을 매개로 하여 통합과 전진을 약속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여기에 바로 민족주의라는 체계화된 사랑이 요구된다.

우리가 경제건설의 물질 고양운동과 함께 민족주의의 체화(體化)를 60년대부터 함께 도모했더라면 북한체제를 숭상하는 좌익, 국민분열을 부채질하는 좌파가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 서구의 노동당, 민주당과 같은 의회중심주의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좌파가 우파를 견제하는 성숙된 민주주의의 기초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민족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한민족 구성원이 대가없이 조건도 없이 우리의 의지처를 존중하고 보듬는 것이다. 어떤 이욕적인 교역관계가 아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공동체의식은 현재의 상태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보고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양보와 전진을 목표로 하는 생존욕구로 뭉쳐진다. 이 ‘생존욕구’가 역동성, 미래지향성의 뿌리다. 오늘의 국민생산, 사회복지, 창조적 역량에 만족하지 않는 에너지원이 그 속에 있다. 어떤 개인이든지 지금보다 더 나은 목표를 추구하고 상승하는 삶을 원한다. 그렇기에 개인을 둘러싼 울타리, 즉 민족의 튼튼한 산맥(山脈)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계화(世界化)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 사랑의 출발점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외래 문물, 문명에 대해 관용하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비합리적인 정신사의 잔재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의식 깊숙이 자리하는 억눌림과 한(恨)의 정서에 닿아있다. 한민족의 공동운명 의식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을 연결해주는 끈이다.

모든 개인은 개별성을 지니지만 이 끈에 의해 공동 귀속성도 가지게 된다. 한민족 모임체 안의 누구라도 개인의 주인됨을 느낌과 동시에 민족의 공동성, 푸근함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족모임체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지만,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므로 인류 동포주의에로의 길은 항상 열려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단일 민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5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에서 단일민족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은 국난을 당할 때 위기를 이겨낸 원동력이었다. 외래문화가 전통문화를 위협할 때에도 창조적으로 수용한 저력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민족주의의 피가 연면히 흐르고 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먼저 동족간 전쟁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통일(統一)로 나아가야 한다. 이 통일은 신라의 삼국통일보다 더 위대한 통일한국(統一韓國)을 만들 것이다. 통일한국은 우리 모두를 가난, 지역감정, 이념분쟁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세계만방에 강국(强國)으로 우뚝서게 해야만 한다. 국권을 잃은 때 민족의식이 더할 나위없는 마음의 고향이었듯이 해방 독립이 된 후에도 우리는 큰 범주의 공동체의식이 절실하다. 여전히 사랑의 공동체이념이 긴요하다. 한민족 민족주의는 우리 겨레 8000만의 오아시스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