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고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친서 수준의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화의 동력을 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연하장 성격을 가진 김 위원장의 친서가 한미 양 정상에게 발신된 만큼 내년에도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커졌다. 연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서울 답방이 무산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크게 일었던 상황이 다소 수습된 셈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친서 수신 사실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이 2019년에도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하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즉시 SNS에 올린 글에서도 “김 위원장이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 의지도 다시 한번 천명해주었다. 새해에도 자주 만나 평화 번영을 위한 실천적인 문제와 비핵화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고자 한다는 김 위원장의 뜻이 매우 반갑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관례상 정상의 편지를 요약하고 의역했다고 하는 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북핵 폐기’는 없다. 다만 남북이 함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한 것에서 최근 미국의 핵우산도 함께 폐기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김 위원장은 편지에서 서울 답방에 대해서도 내년 상황을 주시하며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정은 친서’에 대해서는 외신들도 관심을 보이면서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기 직전에 서한을 보낸 것을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했다. 북한이 그동안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메시지를 어떻게 내는지에 따라 협상 전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 한판 큰 협상을 벌여보려고 기싸움을 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한이 실무협상에 도통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뒤에서 핵무기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미 NBC방송이 보도되는 등 의혹도 쌓여가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을 큰 변화로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북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측에서는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탑다운’ 결정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협상 행태를 지적한다. 

그동안 북한이 국제사회와 합의하고 약속을 폐기한 일이 수없이 반복된 가운데 지금 북한의 비핵화 합의를 다시 점검해볼 때 2005년 9.29공동성명이나 2007년 2.13합의에 훨씬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앉아 직접 핵신고 리스트를 만들 것이 아니라면 비핵화 협상이 실무급으로 넘어가야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비핵화를 거론하려면 북미 간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은 물론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공동저서 ‘평화의 규칙’에서 북핵 해결 단계에 대해 “‘동결’로 시작해 ‘핵 신고’, ‘사찰’, ‘검증 가능하게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폐기’ 및 ‘미사일 추가 생산의 동결’까지 끝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 비핵화의 현주소는 ‘동결’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한 상황으로 그들이 유일하게 폐기했다고 주장하는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 및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북한은 비핵화 이후 받아낼 것부터 계산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을 믿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친서’ 발신으로 또다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회복되는 상황을 맞았지만 김 위원장의 방남이든 2차 북미정상회담이든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없이는 먼저 미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이 잡힐 전망이다.

내년 2월이 지나면 미국 의회가 본격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협상에 대한 공세를 시작할 것이고,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마음대로 대북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 이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대북 대화파를 잃어버린 트럼프행정부는 초강경 노선으로 돌아설 공산이 적지 않아 보인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와 ‘앞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