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불가피…"청와대 압력에 정무적 판단" vs "협의 거친 정책적 의사결정" 쟁점 공방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청와대가 적자국채(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 발행 압력을 넣었고, 정부가 국가채무 규모의 조작을 시도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주장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면서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의혹을 주장했고, 이어 3일 유서를 남기고 반나절 동안 잠적했다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논란을 증폭시켰다.

신 전 사무관 주장과 기획재정부 반박이 부딪히는 지점은 세수가 호황인 상황에서 정부가 수천억의 국고 손실을 초래하는 일을 정무적으로 판단해 추진했느냐 여부다.

정책적 의사결정 vs 정무적 판단

신 전 사무관은 기자회견에서 "차영환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현 국무조정실 2차장)이 직접 국채과장에게 전화해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기로 한 2017년 11월23일)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했다"며 청와대가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하도록 무리하게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김동연 전 부총리가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문재인)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된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핵심은 2017년 국가부채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기재부 차관보가 말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차영환 전 비서관이 당시 기재부에 연락한 것은 12월 국고채 발행계획을 취소하거나 보도자료를 회수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12월 발행규모 등에 대해 최종 확인하는 차원에서 했던 것"이라며 "김동연 전 부총리가 언급했다는 국가채무비율 39.4%는 적자국채 추가 발행 규모 시나리오에 따라 국가채무비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논의됐던 여러가지 대안 수치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특히 기재부는 "청와대도 의견을 제시했으나 강압적 지시가 전혀 없었고 청와대와의 협의를 거쳐 기재부가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적자국채는 기재부 설명대로 논의 과정을 거쳐 발행되지 않았다. 국가채무 4조원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1조원을 갚지 않게 됐다.

다만 김 전 부총리가 당시 정책적 판단이 아닌 '청와대 압력'이라는 정무적 이유로 적자국채의 추가 발행을 지시했냐 여부가 의혹을 풀 핵심 사안이다.

신 전 사무관은 적자국채 발행이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기재부 실무자가 쓴 비망록이 있다"고 밝혔다.

차영환 국무조정실 2차장은 3일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실 공보실을 통해 기자단에게 메일을 보내 "쟁점은 국회가 승인한 28조70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 관련 사항으로, 20조원은 기발행했고 8조7000억원의 적자 국채 추가 발행 여부"라며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은 경제정책을 판단하고 이견있을 경우 조정 역할을 한다. 경제정책비서관으로서 국채 발행에 대해 기재부와 긴밀히 협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영환 차장은 "연말 경제상황과 금융시장 여건을 종합적으로 감안, 협의 끝에 기재부 결정을 받아들여 국채 추가 발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국채 추가발행으로 재정 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과 일정 부분은 국채발행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바이백 돌발 취소'라는 또다른 쟁점

국채 조기상환, 바이백(국고채 매입) 취소에 대한 공방도 또다른 변수다.

당시 정부는 (남는 돈으로 국채를 만기 전에 되사서 조기에 상환하는) 바이백을 하루 전 돌발 취소했다. 

기재부는 대규모 초과 세수가 확실해진 2017년 7월부터 매달 3조원 가량의 국채를 조기 상환하고 있었다.

기재부는 11월에도 3조5000억 원을 조기 상환하기로 하고 공고를 냈지만 이를 돌연 취소해 채권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 2017년 11월3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95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기획재정부

 
기재부는 당시 11월14일 다음날로 예정된 바이백을 취소한다고 공고했고 이에 따라 국고채 3~10년물 금리는 일제히 3bp(1bp=0.01%p)가량 급등해 당시 일 평균 변동폭(0.03bp)의 100배로 뛰었다.

기재부가 공지한 시점은 오후3시20분경으로 채권시장 마감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약속했던 매수주체(정부)가 갑자기 없어지면서 당초 정부를 믿고 채권에 투자했던 시장참가자들인 국고채전문딜러(PD), 일부 채권운용사, 취소 당일 손절매한 증권사들이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 0.001%포인트에도 수억, 수십억 자금이 움직이는 채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다만 다음날 금리가 다시 내렸기 때문에 급히 매매한 투자자가 아니라면 실제로 큰 손실을 봤다고 할 수 없고 손실액을 정확히 추정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신 전 사무관은 "정무적 고려가 부족하다는 김동연 부총리의 질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재부는 바이백 취소 역시 정책적 판단이었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쟁점은 2017년 당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선 전 사무관과 김 부총리간의 문제인식, 상황인식의 차이다.

선 전 사무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채비율이 박근혜정부 마지막 해이지만 문재인정부 첫해기도 해서 굳이 채무비율을 높일 필요가 없지 않냐'는 질문에 "문재인정부 첫해라고 해도 GDP 대비 채무비율이 앞으로 정권 지나면서 오르면 좋지 않다"고 답해, 2017년을 양 정부가 채무비율 관리에 있어서 각각 마지막과 시작으로 구분짓는 한해로 보았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이에 대해 지난해 8월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응답에서 "경제나 국정 운영은 어느 정부의 임기를 딱 잘라 가지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며 "결국 계속적으로 죽 흘러가는 흐름이다. 지금 정책을 맡고 있는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부 구분 없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을 밝혔다.

전날 신 전 사무관은 기자회견에서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공익신고자 보호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기밀누설 혐의 등으로 수사해달라며 고발했다.

향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진 가운데 소위 국가권력 남용, 국정농단 의혹으로까지 커질 수 있는 이번 사건의 진위 여부가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