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이끈 '기업가정신' 필요
이건희 회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 위해 분투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이건희 회장이 병상에서 77번째 생일을 맞이한 가운데 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기업가정신’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이 주춤한 것과 관련해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의견이다. 

9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운 5년 동안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4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 회장이 다져놓은 기반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 덕분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최대 실적을 가능케 한 반도체 호황이 작년 하반기부터 꺾이기 시작하면서 삼성의 미래는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 공개된 삼성전자의 4분기 잠정실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에 따른 걱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59조 원, 영업이익 10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 10.58%, 영업이익이 28.71% 감소한 수치다. 스마트폰 시장 정체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실적의 동반 악화가 실적 감소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 지난 2013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더해 올해 1분기 실적은 4분기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글로벌 서버업체들이 투자를 줄이는 데다 스마트폰 시장 침체로 반도체 가격의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총 수출의 24%, 법인세의 28%를 책임지고 있는 삼성전자가 흔들린다는 것은 비단 한 기업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며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학자들은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이야말로 저돌적인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전쟁의 폐허로 아무 것도 없던 시절, 기업가정신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기업가들의 저력이 다시금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기업가가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선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를 이끄는 주체는 기업이지만, 이를 위해 국민과 정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기업·반시장’ 이념이 공고한 상황에서 이를 실천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의 본뜻

이건희 회장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나 정치권 앞에서 당당했던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민·정부·기업이 삼위일체가 돼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국가경영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며 “(아직 우리는)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지적했다.

당시 이 회장의 발언은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권을 매도했다는 오해를 낳으며 큰 파문이 일으켰다. 

이 같은 오해에 씁쓸해진 그는 “사실 일본에서는 ‘기업은 1류, 행정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말이 나온지 이미 오래됐다”며 “그들 역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이런 극한적인 용어를 써가며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이 하나로 뭉쳐 오늘 날 경제대국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본뜻은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이에 버금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든 정치인과 관료, 언론인, 기업인은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반시장 정책’에 반기 든 이건희…후배 기업인들 본받아야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며 ‘초과이익공유제’를 실시하려고 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기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 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법제화 대신 기업 자율 성과 공유제를 확대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이 회장은 시장의 ‘적’으로 불리는 규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장은 그의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를 통해 “규제와 획일은 타율과 타성을 가져오고, 결국 인간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가로막아 사고와 행동을 오그라들게 한다”고 언급했다.

또 “세계 각국은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최대로 발휘케 하는 경제 시스템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며 “이제는 산업 구조 자체가 정부가 주도해서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한시 바삐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정책 제도에 의해 좌우돼…기업가가 나서야”

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닥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은 물론 그의 당당함이 다시금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정책 제도에 의해 기업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이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기업은 정책 제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때문에 한국의 기업인 역시 제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시대에 제도를 논하며 기업가 정신을 펼친 인물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 정주영 현대 창업주 이후 최종현 SK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정도”라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업가 정신도 탁월했지만, 정치권과 정부에 기업을 위한 정책을 당당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 회장은 경제학자가 아님에도 경제학자 이상으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 고유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있다”며 “그의 탁월한 통찰력은 정치권에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으로 표출됐고, 그것이 오늘 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이 있었던 1995년부터 2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정치인은 4류, 관료는 3류라는 현실”이라며 “더 큰 비극은 그의 예언대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추락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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