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데만 잘 돼서 문제라는 홍종학 중기부 장관
소비자 선택의 결과…'양극화'로 선전선동 말아야
   
▲ 조우현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경제 인식은 확고했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양극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정부 지원을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또 잘 되는 식당만 잘 되고, 잘 되는 옷집만 잘 된다며 이 악순환을 정부가 깰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홍 장관의 경제 인식 수준은 그 옛날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사람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런 유토피아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줬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사회주의 망령이 끊임없이 배회 중이다.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설계를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그 환상이 애처로울 정도다.

만약 양극화에 대한 홍 장관의 인식이 진심이라면,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장관직부터 내려놓고 이야기해야 옳다. 같은 사람인데 누군 장관이고, 누군 나라에 혈세 내며 장관 월급을 지불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양극화 아닌가. 홍 장관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양극화의 주범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권력은 있는 대로 누리고 있으면서 양극화가 문제고, 소득주도성장은 모두 다 서민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위선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과정입네” 하는 것 또한 명백한 혹세무민이다.

   
▲ 지난달 9일 대통령주재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기업 상생사례로 폴레드 팀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폴레드


그런 생각으로 대기업을 바라보니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데, 그 이익이 소상공인, 자영업자한테 안 내려 온다”는 무지한 발언이 가능한 거다. 생각해보라. 대기업 수익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일부는 세금으로, 일부는 기부금으로 나라 경제에 이바지한다. 이뿐인가. 근로자는 월급으로, 중소기업은 직간접적인 납품으로 먹고사는 생태계 또한 대기업 덕에 가능한 거다. 

그런데 그런 대기업마저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지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꺾일 것이란 우려는 애저녁에 제기됐고, 노조들의 극렬한 텃새에 발목 잡힌 대기업 공장들의 애처로운 모습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쯤 되니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이유가 대기업 때문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울 정도다. 

문제는 양극화가 아니라 양극화라는 단어로 이 사회의 분열을 부추기는 홍 장관 같은 사람들이다. 세상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부자들 때문이라는 아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요원하다. 양극화 없이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꿈꿨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잘 되는 식당만 잘 되고 잘 되는 옷집만 잘 되는” 상황을 막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소비자의 선택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자기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의,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잘 되는 곳이 잘 되는 것은 그런 소비자의 욕구를 계속해서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힘들게 번 돈으로 맛없는 음식을 사 먹고 안 예쁜 옷을 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물론 동정심 때문에 맛없는 음식을 사먹고 안 예쁜 옷을 사 입을 순 있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것일 뿐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니 양극화 탓은 그만하라. 이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양극화라는 틀에 끼워 넣어 세상에 없는 문제인 양 부추기는 홍 장관 같은 사람이 제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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