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등 타인 ID로 접속가능하고 해외 유명게임 확인 못해 '구멍'…확인해도 간접적 반증에 불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고 이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병역거부에 대한 종교적 신념-진정성을 놓고 '진위 여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04년 당시 판결을 14년 3개월 만에 뒤집는 결론을 두달전 내놓았지만, 신념의 기준이 되는 '양심의 진정성'을 어떻게 규명하고 이를 입증할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사법처리 일선에서 가장 먼저 이를 규명해야 하는 검찰은 정당한 종교적 거부인지를 가리기 위해 1인칭 슈팅게임(FPS)' 접속 여부를 확인하기로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일 제주지방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제주지역 종교적 병역거부자 12명에 대해 국내 유명 게임업체의 회원 가입 여부 확인에 나섰다.

관건은 누구나 즐기는 총쏘기 게임에 접속했는지 여부로 양심의 진정성을 어떻게 판별하느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게임에 접속했다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간접적 반증에 불과해 형사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1인칭 슈팅게임의 경우 병역거부자가 가족 등 타인의 ID로 충분히 접속 가능하고 해외 유명 슈팅게임들 접속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구멍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총쏘기 게임 접속 유무로 형사소송법상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대법원이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신념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은 신념'이라고 규정했는데 판검사가 관심법이라도 지니지 않는 이상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양심이 진정한지 형사절차에서 증명할 수 없다"며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고 이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병역거부에 대한 종교적 신념-진정성을 놓고 진위 여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검찰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양심에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한 입증을 위해 검사가 수사 대상자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며 "이번 총쏘기 게임 접속 유무도 마찬가지다. 이를 전부 규명하려면 게임회사에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자가 소지한 PC와 모바일폰, 집에 있는 데스크탑 등 거부자 영향권에 있는 모든 게임 접속기기를 압수해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오히려 국가의 수사재판권이 개인 양심의 자유를 재단하고 사생활 침해 여지를 남기게 됐다"며 "총쏘기 게임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영화나 애니메이션, 웹툰을 즐겨 볼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종교적 신념, 자신의 진정성 존재를 주장하는 병역거부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의 신빙성을 따지라는 말인데, 검찰로서는 난제"라며 "종교가 아니라 반전주의 등 자신의 독자적 신념을 기초로 병역을 거부한 경우 이에 대한 진정성을 어떻게 가릴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두달전 판결에서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소명자료 제시하면 검사가 자료의 신빙성 탄핵하는 방법으로 '양심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달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판단지침'을 마련해 일선 검찰청에 배포했다.

총 10가지인 판단지침은 피고인이 교리를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피고인이 주장하는 병역거부가 교리에 따른 것인지 등으로 구성됐다.

현재 전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 거부자는 930여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이들의 개인 양심을 판단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놓고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