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만한 영화들이 사라졌다. 한국영화의 규모와 그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냉철한 안목의 관객들이 많아지면서 생각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팝콘 무비가 도리어 설 자리를 잃은 모양새다.

물론 어설픈 서사와 안일한 스타 마케팅으로 실망을 안긴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적당히 보편적인 소재로 가족 단위 관객을 노리거나, 관람 포용력이 넓어지는 명절 시즌을 겨냥한 영화가 매 해 빠지지 않았다. 어느덧 이러한 장르는 그러려니 하고 봐주는 학예회 작품처럼 자리매김했고, '이 영화를 못 피했다'는 자조 섞인 관람평이 유행어가 된 지금이다.

이러한 상황 속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극장가에 나온 작품이 있다. 포장지만 보면 늘 소모돼왔던 상업영화의 하나 같은데, 뻔뻔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고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니 조금 눈길이 간다.


   
▲ 사진='극한직업' 포스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극한직업'은 꽤 색다른 맛을 들고 왔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유머의 판을 깔았고, 그 위에서 빛을 내는 배우들의 힘이 강렬하다. '스물', '바람 바람 바람' 등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말맛을 우직하게 밀어붙였던 이병헌 감독은 '극한직업'으로 웃음을 향한 관객들의 갈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했다. 이야기의 비틀기와 배우들의 불꽃 튀는 케미스트리를 통해서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5인방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마약치킨'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그들의 아지트 맞은편 치킨집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마약반 5인방은 가게를 내놓았다는 치킨집 사장의 말에 가게 인수를 추진하며 기상천외한 위장 창업 수사에 돌입한다. 치킨집이 뜻밖의 대박을 터뜨리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다 같이 모여 작전 회의를 하고, 범죄조직을 잡기 위한 이들의 고군분투는 멈출 줄 모른다.


   


껍데기는 여타 형사물과 다를 바가 없으나 그 안에서의 신선한 비틀기가 영화의 동력이다. 범인을 잡다 닭을 잡고 성공 신화까지 쓰게 된다니. 누군가는 얼토당토않은 스토리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 그런 영화다. 오로지 웃음만을 위해 달리는 성실함이 맛스럽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유머의 향연 속 입꼬리가 쉴 새 없이 즐겁다. 뻔한 교훈이나 신파에 기대지 않아도, 마냥 즐겁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코미디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건 배우들의 노련한 티키타카 호흡이다. 류승룡은 근엄한 무게감으로 극의 중심을 가져가면서도 마약반 5인방의 만담을 진두지휘해 가장 높은 웃음 타율을 완성했다. 이하늬는 제대로 망가졌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코미디 장르에 첫 도전한 진선규는 강력한 다크호스였고, 이동휘는 잘해오던 걸 그대로 잘했다. 백치미 섞인 공명의 변신은 풋풋하고 신선하다.

코미디가 소모품처럼 이용되고 무성의하게 제작되는 영화시장에서 잘 만들어진 코미디가 참 그리웠다. 거창하지 않아도 유치하게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스케치를 늘 바랐다. 그 속에서 이병헌 감독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고, 제대로 만든 코미디를 다시 갖고 나왔다. '극한직업'은 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다 했다. 소문 난 맛집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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