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실 반영한 회계규칙 없이 감사 강행
일부 재정만 지원하고서 '비리 프레임' 고수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일부 사립유치원들의 개학 연기를 놓고 정부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강 대 강'으로 맞서면서 일촉즉발로 치닫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립유치원의 영리성·사유재산·회계·지원금 등 양측 쟁점과 대치 상황에 대해 유치원정책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정부가 '비리 프레임'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4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대해 공공성을 추구하는 비영리기관이라고 규정하고 이윤이나 자본비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982년 전두환 정부가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할 당시 영리성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김승욱 교수는 "당시 문교부 종합기획관이던 양재도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사항에 따라 누구나 유치원을 설립하고자 하면 제한 없이 인가하고, 시설 설비 및 운영에 있어 자율에 맡기며, 유치원 운영에 일체의 간섭을 하지 말고 학부모 선택에 맡길 것이라는 3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김승욱 교수는 "이러한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역대 정부는 2012년까지 사립유치원의 영리행위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며 "정부 행정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당사자에게 아무런 통보나 법적근거 없이 해석을 달리하거나 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은 행정절차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제4조 신의성실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승욱 교수는 특히 한유총이 정부 조치에 대항해 사유재산권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사립유치원은 2004년 유아교육법이 제정되면서 학교 지위를 상실하게 되어 더 이상 비과세기관이 아니다"라며 "2015년부터 재산세 15%가 부과되고 올해부터 100% 과세가 이뤄질 예정이고 세금은 설립자 개인재산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정당국이 사립유치원 재산을 별개의 유치원 재산이 아니라 설립자의 개인재산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정부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12년 누리과정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언급했다.

김승욱교수는 이어 "당초 회계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고 1981년부터 2012년까지 설립된 유치원 3152곳의 유치원 설립자들은 자영업자로 운영해도 된다는 조건으로 인가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며 "정부가 교육비 일부를 지원하다가 '지원금'을 '보조금'이라고 명칭을 바꾸어 규제하고, 설립자 소유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용민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정부가 현실을 반영한 회계규칙으로 개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립유치원에 대한 회계감사를 밀어붙여 '비리 프레임'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김용민 교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정보를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에 강제로 통합시켜 공개하려는 것은 민간에 대한 재산권 침해이며 위헌적 반시장적 불법적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립학교법상의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은 사립유치원에 적용할 수 없고 전문회계지식이 없는 유치원장들에게 학교법인 수준의 증빙확보를 요구해 기장 기입과정에서 계정과목 왜곡 처리 등을 유발했다"며 "결국 이로 인해 사립유치원에게 수천 건의 회계 비리(?)가 적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는 이를 통해 하루아침에 사립유치원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어 학부모들에게는 커다란 혼란을, 유아교육자들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사명감의 훼손을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 자유경제&교육포럼 주최로 2월1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공공성 투명성 선동으로 개인 재산권 침탈하려는 정부' 세미나에서 현진권 자유경제포럼 대표가 사회를 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정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인한 에듀파인 강행과 일련의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재정만 지원하고서 사립유치원 회계를 다 들여보겠다는건 국가권력의 관음증"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행범 교수는 "국가재정으로 운영하는 국공립 유치원과 완전히 같은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에듀파인이라는 회계 방식을 적용할 근거가 없다"며 "유치원의 재무 비중에서 정부 지원이 압도적인 경우에만 에듀파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행범 교수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정부 지원 부분에 대한 회계관리를 분리하면 얼마든지 투입한 재정액의 투명한 관리가 가능하다"며 "일부 재정만을 지원하고서 그것을 핑계로 사립유치언의 안 살림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사립에 대한 국가권력의 재정 관음증(Fiscal Voyerism)"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정이 일명 '유치원 3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급조해 입법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졸속"이라며 "이렇게 만들어진 졸속 법률은 관련 집단(한유총)과의 소통을 결여하고 유아교육기반을 일시에 허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유총의 개학 연기 방침에 대해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유총에 대해 무관용 원칙과 단호한 대처를 강조했고,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자초했다"며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교육부는 개학을 연기한 사립유치원들이 5일까지 개원하지 않으면, 실제 개원 여부를 확인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 뒤에도 개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 조치할 계획이다.

정부가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한유총의 대화 제의에 응해 갈등을 봉합할지 주목된다.

앞서 한유총은 지난 1일 정부의 애듀파인 도입을 전격 수용하면서 "개학연기 철회의 공은 교육부로 넘어갔다"며 "공론화로 풀어야 하고 그 결과를 수용해 회원들을 설득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