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솔직히 손흥민(27·토트넘)이 중국전에 출전하지 않았으면 했다. 중국쯤은 손흥민이 나서지 않더라도 다른 태극전사들이 열심히 싸워서 이기고, 손흥민은 16강 이후 토너먼트에서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해 59년 묵은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 한을 앞장서 풀어주기를 바랐다.

한국은 16일 밤 10시30분(이하 한국시간)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9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 16강 이후 토너먼트에서 유리한 대진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손흥민은 선발 출전해 전반 황의조의 선제골로 연결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후반 김민재의 추가골에는 깔끔한 코너킥으로 도움을 기록했다. 한국의 승리에 손흥민이 절대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사실 손흥민의 이날 중국전 출장은 무리였다. 

손흥민은 지난 14일 오후에야 대회가 열리는 UAE에 도착했다. 소속팀 토트넘의 14일 새벽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풀타임 출전을 하고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6시간 가량을 날아왔다. 

도착 당일 실내 회복 훈련과 휴식을 취한 손흥민은 15일 하루만 동료들과 팀 훈련을 소화하고 중국전에 선발 투입돼 후반 42분 구자철과 교체될 때까지 거의 풀타임을 뛰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도 살인적인 강행군을 이어왔다. 최근 40여일 동안 13경기나 출전했다.

이렇게 큰 체력부담을 안고 있는 손흥민을 중국전에 내보낼 것인지 벤투 감독의 고민은 컸다. 경기 하루 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벤투 감독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고, 경기 직전에야 손흥민 출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선발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16강 이후도 중요하지만, 중국전에 많은 것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조 1위와 2위는 향후 일정, 8강 및 4강에서 만날 상대 등에서 차이가 컸다. 조 1위를 하면 22일 16강전을 치러 5일간의 휴식이 보장되는 반면 2위는 20일 16강전이 잡혀 있어 준비 기간이 촉박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벤투 감독은 고민 끝에 손흥민을 선발 출전시켰다. 영국에서 경기를 뛴 지 만 70시간도 지나지 않아 UAE에서 경기에 나선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이렇게 강행군을 해도 끄덕없는 '철인'인가. 물론 아니다. 손흥민도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체력이 떨어져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자 왜 벤투 감독이 무리를 해가면서 손흥민을 선발로 출전시켰는지, 왜 중국이 그렇게 손흥민을 두려워하며 출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손흥민이 캡틴 완장을 차고 경기를 지휘하자 한국대표팀은 앞선 두 경기 때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선수들은 허둥대지 않았고, 경기의 완급 조절이 됐고, 그 많던 패스 미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찬스에 비해 골이 2골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확실히 경기력이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전에서 고전할 때와는 달라졌다. 또, 한국의 두 골은 모두 손흥민이 이끌어낸 것이었다.

   
▲ 중국전에서 수비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있는 손흥민. /사진=대한축구협회


손흥민은 클래스가 다른 플레이를 보여줬고, 기성용이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우며 그라운드의 사령탑 역할도 해냈다. 중국 선수들이 손흥민을 막아보려고 집요하게 몸싸움을 걸고 파울로 괴롭혔지만 손흥민은 의연하게 대처하며 기량으로 눌렀다.  

한국의 승리가 거의 확정된 후인 후반 43분에야 손흥민은 구자철과 교체돼 물러났다. 2-0으로 리드를 잡은 후 좀더 이른 교체를 해줄 수도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뺄 경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분위기 변화를 우려한 듯 신중을 기하며 최대한 교체 타이밍을 뒤로 미뤘다. 그만큼 손흥민의 존재감은 컸다. 손흥민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대표팀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줬다.

한국은 손흥민 덕에 대회 초반 부진을 털고 다소 편안하게 토너먼트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은 그야말로 한국축구에 귀한 선물이자 보물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한국에게 졌지만, 손흥민 한 명에게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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