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 발표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문제시 경영권 참여 항목 포함돼 논란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연금기금 국내 주식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에 기업 내부 경영관련 사안 뿐 아니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적으로 예상치 못한 우려를 낳은 기업’이라는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자칫 여론몰이를 당할 가능성이 크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민연금의 정치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21일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두 기관은 지난 20일 ‘국민연금기금 국내 주식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예상치 못한 우려’라는 항목이 포함됐다.

‘예상치 못한 우려’는 사주 갑질과 컨트러버셜 이슈,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문제 시 사전 조치 후 경영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배당, 임원보수, 횡령·배임, 사익편취, 동일 사유 개선 요구 불이행 문제 시 사전 조치 후 경영권에 참여하는 ‘중점관리 사안’과 전·현직 재직자, 업무집행 관여자에 대해 기업이 책임 추궁을 게을리 하면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주주대표 소송’이 포함됐다.

또 주식 채권 부동산에 손해를 가한 모든 배상책임에 대해 기업·임직원을 상대로 소송이 가능한 ‘손해배상 소송’도 가이드라인에 들어가 있다.

   
▲ (왼쪽)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오른쪽)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이른바 ‘대한항공 물컵 사태’로 촉발됐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사건 이후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원칙)을 도입, 투자 기업의 이사 및 감사 선임·해임, 정관변경 등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와 주주 대표소송, 손해배상소송 등 각종 소송을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을 빌미로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을 정당화 하는 것은 더욱 큰 부작용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작은 대한항공이었지만 다른 기업들도 해당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예상치 못한 우려’ 항목의 경우, 기업의 이슈가 여론 재판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재계 역시 긴장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 물의라는 것의 기준이 애매모호해 여론재판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고, 자칫 밉보일 경우 국민연금의 입김이 강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며 “기업이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는 것이 일상인 상황에서 해당 조항이 포함된 것에 대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국민연금의 이 같은 움직임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한 고객이 국민연금 종로중구지사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한진그룹과 같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하는 것은 헌법 제126조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법 제102조 2항은 국민연금이 최대수익을 획득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를 위해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개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25년에는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9%를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개입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기금운용본부장도 정부가 검증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재벌개혁을 위한 관치로 이어져 연금사회주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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