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아무리 많아도 관람객이나 소비자 찾지 않으면 무용지물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세계의 저명한 박물관에 가보면 진귀한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에도 한민족의 얼이 담긴 찬란한 문화유산이 많다. 진귀한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해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일까?

적어도 문화예술 마케팅의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진귀한 문화유산이 아무리 많은 곳이라 해도 관람객이나 문화예술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와 감상하면서 진귀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훌륭한 박물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박물관학 전문가 이보아 교수는 "가장 훌륭한 박물관은 관람객이 넘치는 박물관"이라고 주장했는데,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관람객이 넘치는 박물관이야말로 유명한 가수의 공연장처럼 관객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은 지금의 뜻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신(神)에게 바치기 위한 수집품 자체를 의미했다.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Ptolemaios I, BC367-BC283)가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알렉산드리아 궁전에 수장(收藏)하면서부터, 뮤지엄은 지금과 유사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귀족사회에서 수집품을 수납하는 시설에 그쳤던 뮤지엄은 19세기부터 일반인에게 널리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뮤지엄은 '사회적 공유재'라는 보편적 인식을 확보하게 되었다. 예컨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도 사회적 보편재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같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운영 목표도 관객이나 관람객이 넘치게 하는 방안을 찾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문화예술 마케팅에서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들도 관객이나 관람객이 넘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해법을 찾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상품과 브랜드의 속성이나 혜택을 강조하는 것은 기업 마케팅에서의 핵심 전략이다.

   
▲ 대영박물관 앞에 선 필자(2016).

기업의 마케터들이 상품과 브랜드의 속성과 혜택을 어떤 미디어를 활용해 언제 어떻게 알릴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고심했다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마케터들은 문화예술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문화예술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강조하려고 고심한다.

기업의 마케터들이 어떤 상품과 브랜드의 합리적인 가격을 강조했다면, 문화예술 마케터들은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값진 행위라고 하면서 가격의 가치성을 부각시켰다. 이처럼 일반적인 마케팅과 문화예술 마케팅은 그 개념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마케팅 환경이 급변하고 소비자 행동도 달라지고 있는 디지털 융합 시대에, 문화산업이란 용어는 이제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 문화예술 마케팅도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경영 활동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었다. 공연기획자, 예술행정가, 전시 큐레이터 같은 직업이 2010년 이후 청년들이 주목하는 직종으로 떠올랐다.

문화산업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되었기에 가능한 현상이며, 취업 준비생들은 문화예술 관련 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예술 마케팅도 계속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대의 기업들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가치를 환기하는 마케팅 수단의 일환으로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문화예술 마케팅이나 문화예술기관의 마케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다양한 맥락에서 정의해왔다. 문화예술작품을 알리는 동시에 티켓 구매를 유도하는 모든 마케팅 활동을 일컬어 문화예술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정의가 대표적이다.

어떤 문화예술기관이 확보한 관객의 유형을 파악하고 어떠한 문화예술 소비자를 확보하기를 원하는지, 목표로 하는 관객과 관람객을 공연이나 전시에 참여시키기 위해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모든 활동이 문화예술 마케팅이라는 관점도 있었다. 나아가 문화예술 콘텐츠를 널리 알리고 소비하도록 하는 방법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거나, 문화예술작품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마케팅 활동 모두를 문화예술 마케팅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문화예술 마케팅의 개념을 정의하려면 문화예술 마케팅을 문화예술의 제반 요인을 상품화해서, 문화예술 소비자의 선택을 촉진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문화예술 마케팅을 포괄적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나아가 문화예술을 표방하는 모든 영역을 고려하면 문화예술 마케팅의 개념이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마케팅 활동에만 국한시킬 필요도 있다. 결국, 문화예술 마케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문화예술 마케팅이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문화예술작품의 가치를 제고함으로써, 기존 관객의 구매를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예술 소비를 개발하고 활성화시키는 일련의 마케팅 활동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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