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 축구가 혼돈에 빠졌다. 또 위기다. 아시안컵에서 준결승행 문턱도 못 넘고 8강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5일 열린 카타르와 아시안컵 8강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로 졌다. 충격적인 패배이며 충격적인 8강 탈락이었다.

당연히 사령탑 벤투 감독의 무능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대표팀 지원을 제대로 못한 대한축구협회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한 대표선수들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역시나 비난의 중심에는 우선적인 책임을 져야 할 벤투 감독이 있다. 컨디션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대표선수 선발부터 시작해 빌드업만 강조한 단순한 전략, 로테이션 없는 선발 기용, 타이밍과 적절성을 상실한 선수 교체, 손흥민의 중국전 무리한 기용이 부른 악영향 등 이번 대회 실패를 부른 벤투 감독의 무색무취 지도력이 하나하나 도마 위에 올랐다. 대부분 합당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축구는 어떻게 될까. 일단 대표팀은 벤투 감독 체제로 계속 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9월 부임한 벤투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본선 진출 시) 대표팀을 이끌기로 되어 있다. 지휘봉을 잡은 지 4개월밖에 안된 벤투 감독을 아시안컵 실패 때문에 경질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잠시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5 호주 아시안컵 때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한국은 아시안컵 결승까지 올라 개최국 호주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숙원을 풀지는 못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준우승의 성과로 상당한 찬사를 받았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을 때의 상황은 벤투 감독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 전 해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의 한국은 조별리그서 1승도 못 올리고 탈락해 비난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역시 외국인 감독'이라는 요구 속에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태용 감독의 한국이 1승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돼 데려온 감독이 바로 벤투였다.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어떻게 됐나. 갈수록 신망을 잃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무난하게 대표팀을 이끌 것으로 보였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보이고 심지어 본선 진출 실패 위기에까지 몰렸다. 결국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경질됐고,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아 어렵게나마 한국의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성사시켰다.

4년 전 슈틸리케 감독의 전례를 통해 벤투 감독에 대한 역발상을 해 본다. 벤투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과 달리 첫번째 과제였던 아시안컵에서 실패했다. 상당한 호응을 받았던 슈틸리케 감독과 달리 앞으로 벤투 감독은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 속에 대표팀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아시안컵 결과를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슈틸리케 감독은 좋은 스타트를 하고도 자신이 책임진 월드컵(또는 최종예선 통과)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지금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벤투 감독은 첫 대회에서 삐끗했고 출발이 나빴다. 실패를 통해 현재의 대표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잘 드러났다. 선수 관리에 왜 실패했는지, 감독의 작전은 왜 먹혀들지 않았는지, 점유율 축구는 성공했는데 왜 경기 내용은 한결같이 답답했으며 골은 잘 터져나오지 않았는지 등등.

한국 대표팀, 즉 벤투호의 문제점을 조기 확인한 것을 이번 실패한 아시안컵의 최대 수확(?)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문제점들을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대표팀과 한국 축구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감독이든 축구협회든 선수든 현실적으로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벤투 감독은 8강 탈락 후에도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오랜 지도자 경력의 감독이 설마 아마추어 축구팬들도 아는 이번 대표팀 실패 원인들을 모르겠는가. 벤투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못 이기는 축구'를 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 자신의 지도가 경기력으로 발휘되지 못했는지 통렬하게 반성할 것이고, 기술위원회의 대회 분석과 평가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달라질 벤투 감독과 달라질 대표팀을 기대해 본다. 아시안컵 실패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벤투호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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