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 일본이 이란을 완파하는 것을 보니 솔직히 부러웠다.

일본은 28일 밤 열린 2019 아시안컵 준결승 이란과의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뒀다. 통산 4회나 우승해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일본은 결승에 올라 5번째 정상 정복을 노리게 됐다.

일본과 이란은 모두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이었고, 대회 최다 우승국 일본이 이란을 이긴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3-0 스코어와 경기 내용은 분명 놀라웠다.

이란은 조별리그부터 8강전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12골이나 넣고 무실점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은 8득점 3실점해 수치상 이란보다 공격력이 떨어지고 수비 허점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별리그야 수준 차가 있는 팀들과도 만나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된 후 경기 내용도 이란과 일본은 딴판이었다. 이란은 오만과 16강전 2-0, 중국과 8강전 3-0 승리 등 파괴력을 보였다.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베트남을 상대한 16강, 8강전에서 모두 1-0으로 이겼는데 극도의 수비 위주 전략으로 한 골 넣고 잠그기로 따낸 승리였다.

   
▲ 이란전 3-0 승리를 이끌어낸 모리야스 감독과 일본 베스트 11. / 사진=AFC 홈페이지


하지만 이란을 만난 일본은 달랐다. 전반까지는 특유의 신중한 경기 운영으로 버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반 이란이 강하게 나오자 맞받아칠 줄 알았고, 이란이 빈틈을 보이자 파고들어 선제골(미나미노의 볼에 대한 집중력+오사코의 결정력)을 뽑아냈다. 리드를 해도 잠그기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라인을 끌어올려 수비진이 헐거워진 이란의 약점을 노려 두번째 골(미나미노 페널티킥 유도+오사코 정확한 슛)을 만들었다. 이후 템포 조절로 이란에게 조급증을 안긴 끝에 하라구치의 막판 쐐기골이 터지며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8강전까지만 해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던 일본이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이란에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개인 기량 측면에서야 일본과 이란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일본 선수들은 끈기가 있었고, 집중력을 발휘했고, 상대의 빈틈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란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철저한 대비도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쯤 되면 일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시아권 국가 중 유일하게 16강에 오른 팀이다. 월드컵 이후 감독도 바꾸고 선수들도 젊은 선수로 많이 물갈이를 해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다. 그런 가운데도 이번 아시안컵에서 최소 준우승을 확보했고, 또 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릴 가능성도 높였다.

8강전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카타르에 0-1로 패하며 탈락한 한국은 일본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부러워하면서, 어떤 점을 배워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일본 대표팀은 사실 외부적으로는 흔들릴 여지가 많은 가운데 월드컵을 치렀고 아시안컵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4월, 러시아 월드컵 개막 2개월을 앞두고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고 니시노 아키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니시노 감독은 준비 기간도 거의 없이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의 성과를 냈다. 월드컵을 마친 후에는 다시 대표팀 사령탑을 모리야스 하지메로 교체했다. 이번 대회 8강전까지 일본이 신통찮은 경기력을 보이자 모리야스 감독에게 비판이 쏟아졌지만, 모리야스 감독은 흔들림없이 '이기는 축구' 전략으로 일본을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일본축구의 최근 흐름을 보면 감독을 누가 맡는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아시안컵 일본대표팀은 대부분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됐다. 큰 무대에서 뛰며 개인기만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끈기 있고 열심히 뛴다. 투지 하나는 자부심을 가졌던 한국 선수들이 이번에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인 것과 비교가 됐다.

한국은 8강전에서 이란, 4강전에서 일본을 만날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조별리그 2연승으로 16강이 확정된 후에도 중국과 경기에 손흥민을 무리하게 출전시키는 등 총력전을 폈다. 그 후유증이 분명 있었다. 일본과 이란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국이 왜 그렇게 중국전에서 힘을 뺏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꼭 그래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가 누가 됐든 우리 자신부터 강해져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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