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에만 20조 쏟아붓는다... "재정 오남용 우려" 지적도
   
▲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정부가 총 사업비 24조 1000억원 규모의 23개 지역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키로 했다.

정부가 29일국무회의를 거쳐 발표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대상 사업은 주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경기 진작 및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내수 촉진과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최소한의 경제성 검토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정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지역균형 발전, 지역 경제활성화에 방점

정부가 의결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상의 예타 면제 대상에는 교통·물류망 구축 등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총 20조원 규모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천∼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4조 7000억원) 등 사업비가 1조원이 넘는 공사만 8개에 달한다.

특히 SOC 사업 중 4개 사업이 경남·울산·부산 등에 집중돼,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경기기 침체된 '동남권'의 경기 활성화를 배려했다.

이번 예타 면제 조치로 대규모 SOC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고용유발 효과가 큰 대표적인 업종인 건설업 경기가 탄력을 받으면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하면서 국가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우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전국 권역을 연결하는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에 필요한 예타가 우선 면제됐다.

우선 경북 김천~경남 제주 간 남부내륙철도(4조 7000억원 규모)를 통해 수도권과 경·남북 내륙을 연결한다.

또 호남권과 강원권을 연결하는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 5000억원)를 추진하고 세종∼청주 고속도로(8000억원), 제2경춘국도(9000억원)도 예타 없이 추진된다.

전국 주요 고속철도가 통과해 '병목현상'이 심한 평택∼오송엔 3조 1000억원으로 철로를 추가한다.

8000억 원짜리인 새만금 국제공항을 통해서는 인접 국가와 접근성이 향상돼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할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 3조 6000억원을 지역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전략산업도 육성한다.

전북에 2000억원을 들여 상용차 산업혁신에 나서고, 광주에는 4000억원을 투입해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 단지를 만들며, 14개 시·도와 연계하는 전국단위 R&D에 1조 9000억원을 투입하고, 1조원을 들여 시·도별 55개 국가전략산업을 지정해 지역 거점별 성장을 추진한다.

대전시 5개구 전역을 순환하는 트램(7000억원), 서울도시철도 7호선을 포천까지 연정하는 도봉산 포천선(1조원)이 추진된다.

   

◇ "예타를 아예 없애면 최소한의 안전장치 사라져"

정부는 예타를 면제함으로써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방의 정책 사업을 활성화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 예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인구·수요가 적은 지방 사업의 경우 예타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으니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서 예타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성보다는 균형발전에 배점을 많이 하도록 기준을 바꿨음에도, 지역은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번번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예타 면제가 "원활하게 균형발전이 이뤄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23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을 오는 2029년까지 연평균 1조 9000억원을 들여 연차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올해 정부 재정 총지출 규모 470조원과 비교할 때, 중장기적 재정운용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균형발전이나 지역 활성화 등을 내건 예타 면제가 잘못됐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녹색교통운동,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예타 면제가 "토건사업 확대를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한국환경회의는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예타는 개별 공공사업이 국익에 들어맞는지 검증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그 '안전장치 빗장'을 손쉽게 제거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결함을 정부 스스로 초래하는 일과 같다"고 우려했다.

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선거 등을 앞두고 정권이 재정을 오·남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에 예타가 도입됐는데, 지금 그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예타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주체가 최소한의 타당성을 살피는 것인데, 그것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예타 면제보다는 예타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고 못 박은 정부의 선정 방향 때문에 선정에서 배제된 신분당선 연장선은 '수도권 역차별' 논란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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