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전 운동권과, 체제변혁 한국 운동권은 닮은꼴
공권력과 법치에 대한 존중 여부는 하늘과 땅 차이
   
▲ 조우석 언론인
'마르크스님의 왼쪽에 앉은 교수들의 천국'이란 제목으로 내보냈던 벤 샤피로의 책 <세뇌>(기파랑) 서평에서 미처 못 다한 얘기가 하나 있다. 아니 별도의 글감이란 판단으로 제외시켜 놓았는데, 학생운동권을 보는 미국과 한국의 풍토 차이를 설명해줄만한 흥미로운 스토리다.

저번에 밝힌 대로 "미국 대학에서 허용되는 사상과 표현과 언론 자유는 좌에서 극좌까지다"라는 게 <세뇌>의 지적이다. 미 대학의 타락이 그 정도인데, 그런 배경으로 1960~70년대 반전평화를 외치던 극렬 운동권 웨더 언더그라운드 얘기가 책에 설핏 등장한다. 일리노이대 교수인 윌리엄 에이어스와 그의 부인도 거기 출신이란 얘기다.

그런데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왜 악명 높은가. 펜타곤-군사기지에서 은행을 타격 목표로 연쇄 테러를 자행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케 했던 최악의 테러 단체다. 그런데도 에이어스는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우린 행동했고 다시 행동할 것이다"고 뻔뻔하게도 자기 책에 썼다.

할리우드 영화 '컴퍼니 유 킵'

그런 테러범을 교수로 임용하는 대학이란 곳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라는 게 벤 샤피로의 개탄이었다. 그런 웨더 언더그라운드 얘기가 내게 유독 인상적인 건 예전 국내 개봉됐고, 영화채널에서 종종 봤던 할리우드 영화 '컴퍼니 유 킵(The Company You Keep)' 때문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 겸 배우로 나오고, 여배우 수잔 서랜든도 나오는데 둘은 웨더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테러에 가담했다. 이후 경력을 세탁한 뒤 인권변호사(레드포드)와 전업주부(서랜든)로 숨어 살아온 그들을 30년 추적해온 FBI에 의해 하루아침에 쫓기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데 둘은 쫓기는 중에도 운동권 신념을 과시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때 행동은 일부 실수가 있었지만, 옳은 일"이었고, 당시 자신들은 혁명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는 고백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저들의 눈에 월남전에 개입하는 미 정부는 대학살을 자행했는데,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었다는 명분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 사회도 맹비판한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에는 나는 승복 못 한다", "정치가와 기업인들이 죄를 시인한다면, 그땐 자수한다"는 발언 등이 그것이다. 벤 샤피로가 말하는 '리버럴 교리'의 덫에서 저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컴퍼니 유 킵'은 운동권 영화이고, 보다 넓게는 PC(Political Correctness)영화로 분류된다. 즉 좌빨에 동조하는 것만이 올바르다고 믿는다.

   
▲ 할리우드 영화 '컴퍼니 유 킵'(왼쪽)과 한국영화 '화려한 휴가' 포스터.

할리우드 영화 상당수가 그렇게 오염됐다는 걸 우린 알지만, 그러나 '컴퍼니 유 킵'이 한국의 운동권 영화와 확연히 다른 게 있다. 내가 말하는 한국의 운동권 영화는 운동권을 소재로 만든 '변호인', '남영동 1985', '1987'은 물론 광주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을 포함한다.

간첩을 소재로 한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나, 일제시대를 다룬 '암살', '밀정' 따위도 한국형 PC영화다. 그들의 특징은 공권력을 조롱하고, 법치 따위야 안중에 없는 점이다. 바탕에 깔린 반 대한민국의 코드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게 거덜 난 이 나라의 정치문화 위기를 새삼 보여주지만, 눈여겨 볼 건 '컴퍼니 유 킵'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 위에 운동권이 올라탄 구조

미국의 옛 운동권에 동조하는 내용이지만, 막강한 공권력-법치(法治)에 대한 두려움이 바탕에 짙게 깔려 있다. 운동권 출신 각자의 의식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즉 테러로 사람을 죽인 불법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도 뚜렷하다. 다음의 수잔 서랜든 발언이 상징적이다.

"(죄책감을 가지고 산) 지난 30년은 지옥이었다. 애가 큰 뒤 자수하려했다." 즉 미국의 체제란 감히 언터처블의 영역이고, 미국 영화는 이 선을 넘지 않는다. 우린 어떤가? 이 나라 운동권 영화 속의 공권력은 조롱의 대상이고, 국가는 악의 화신이다. 달리 말해 한국과 미국 대학은 구조가 같지만, 주류 체제가 얼마나 건강한가는 하늘과 땅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미국은 체제수호 세력이 견고한데 비해 왜 우린 거덜 나기 직전인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가? 실은 건국 과정부터 다르다. 미국 건국혁명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민혁명이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 건국의 경우 국민적 합의만큼이나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에 의해 선물로 주어졌음을 부인 못한다.

그래서 이 나라를 지키려는 태도 역시 절박하지 않다. 그러저런 이유로 87년 체제 이후 민주화의 외피를 쓴 운동권이 체제 내부로 침투하는 걸 막지 못했다. 공권력-법치에 대한 무시, 그 바탕에 깔린 반 대한민국 물결도 방치했다. 그런 운동권에 월계관을 씌워주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89년 동의대 사태에서 보듯 진압 경찰관 7명을 죽인 살상범 대학생들이 나중에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했던 게 매우 상징적이다. 헌법 위에 떼법이 있듯이, 대한민국 위에 운동권이 올라탄 구조다. 저들은 청와대 권력까지 쥔 채 오늘의 국가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황이 우연일 리 없다. 오죽하면 '주사파 강점기'란 말까지 나올까?

더욱이 2019년 올해는 이 나라 장래에 결정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현 정부로 상징되는 운동권 세력이 끝내 이 나라를 쓰러뜨릴 것인가, 아니면 대반전이 일어날 것인가? 한반도 주변환경, 임박한 트럼프-김정은 2차 회담 등이 겹쳐 정말 아슬아슬한 국면을 연출할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우린 되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정상사회였다면,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87년 체제를 한 10년 정도 실험한 뒤 90년대 중후반에는 운동권 논리와 굿바이한 채 선진화 논리로 나갔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체제변혁이란 헛꿈을 꾸는 운동권을 깔끔하게 정리했어야 옳았다. 그걸 염두에 두고 한 번 더 절박하게 묻자. 올 한해 이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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